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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글로벌 학술정보회사 클래리베이트(Clarivate Plc)가 발표한 ‘2025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2025 Highly Cited Researchers, HCR)’에 전 세계 60개국 1300여개 기관에서 총 6,868명이 선정됐으며 국내에서는 76명의 연구자가 이름이 기재됐다.
서울대는 76명 중 16명을 차지했다. UNIST(울산과학학기술원) 9명, 성균관대 7명, 한양대 6명, 경희대/영남대/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하 KIOST) 각 4명 순이다.
영남대학교에서도 4명이 나왔다
한국대학신문 2026. 6. 18 자에 의하면 세계 대학평가 중에서 서울대가 38위, 연세대가 42위, 고려대가 52위, KAIST가 65위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6년 QS 세계 대학 평가 전공별 순위에 의하면 서울대는 5개 분야가 모두 상위에 랭크되었다.
컴퓨터 공학 순위
영국의 글로벌 대학평가기관인 Quacquarelli Symonds (콰콰렐리 시몬즈)에 의하면 컴퓨터 공학, 정보시스템에 있어서 MIT, 스탠퍼드 대학이 상위를 차지하고, 하버도는 9위,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국립대학교가 4위, 중국의 난양공과대학교가 9위를 차지하고 서울대학교는 47위 이다.
세계 대학 순위
시카고 대학은 13위, 예일대학은 21외이다. 서울대가 미국의 아아비리그와 별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세계적인 대학이 되었다.
미네소타 프로젝트
서울대학교 역사 기록관에 의하면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전쟁 이후 1954년부터 1962년까지 8년 동안 미국의 대외원조 기관에 의해 실시된 고등교육 분야의 원조 사업으로, 미네소타대학교가 원조대행기관이 되어 프로젝트의 실질적인 수행자로서 서울대의 재건을 지원했다. 공식 명칭은 '국립서울대학교 협력프로젝트(Seoul National University Cooperative Project)'이다"라고 적고 있다. 8년간의 예산은 1,000만 달러였다. 미연방정부 대외원조기관은 1000만달러의 예산을 들여 서울대 교수들을 교육시켰던 것이다. 1000만불이 한 민족을 살렸던 것이다.
당시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최남규 서울대 총장은 “내가 이 사업을 추진시킨 주목적은 이 원조를 통해서 서울대학교를 장차 등에 지고 나갈 유능한 지도자를 양성하자는 데에서였다. 그러므로 물론 교수도 많이 파견하여 시찰 연구케 할 것이지만 우리 대학의 졸업생-서울대학교를 나온 우수한 청년들을 3년 혹은 4년 동안 장기간 유학시켜 충분히 연구시킨 뒤 다시 모교로 돌아오게 하여 서울대학교의 지도자가 되게끔 하려는 것이 내 마음이다.”고 했다. 그는 직접 해외원조 기구와 접촉하여 재원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서울대학교는 1955년부터 1958년 7월 31일까지 농학 · 공학 · 의학 부문 3개 단과대학의 교환교수 프로그램, 시설복구, 장비지원 등의 사업에 총 545만 1,000달러를 지원받았고 연장프로그램으로 서울대학교는 추가로 434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약 1000만 달러를 지원받는다.
이에 따라 행정대학원, 수의과대학, 간호학과, 보건대학원으로 원조 부문을 확장하여 농학, 공학, 의학, 행정학, 수의학, 간호학, 보건학 등 총 7개 학문 분야를 지원했다. 행정대학원과 보건대학원은 이 시기 해외 원조 사업으로 인해 1959년 독자적인 특수대학원으로 신설되었다.
서울대학교 역사 기록관에 의하면 "1955년 국제협조처(ICA)로 개편) 한국 경제원조에 의한 본교와 미국 미네소타대학에 체결된 서울대학교 기술원조협정(일명 서울대-미네소타 프로젝트)에 의하여 본교 수석자문관으로 부임한 슈나이더(Arthur E. Schneider) 박사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본교 황영모 공과대학 학장, 이제구 의과대학 학장, 조백현 농과대학 학장, 윤일선 부총장이다"이 함께 했다.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시작은 교환교수 연수 프로그램부터였다. 1954년부터 1962년까지 총장 1명을 포함한 총 218명의 서울대 교수들이 미국에 파견되었다. 211명이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공부한다.
분야별로는 농학 45명, 공학 64명, 의학 64명, 간호학 9명, 보건학 4명, 행정학 19명, 수의학 12명이다. 이 중 211명은 미네소타대학에서, 7명은 MIT, 캘리포니아대학 등 미국의 5개 대학에서 연수에 참여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인재양성과 물자지원에 초점을 두었으며, 당시 한국 상황에서 국가 발전에 가장 직접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다고 여겨진 공대, 농대, 의대에 집중 지원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인재양성 계획으로 교수진 재교육, 장단기 연수 및 유학 프로그램이 실시되었고, 이를 통해 수준 높은 학문을 습득하고 전파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또한 물자지원 사업으로 학교 건물과 시설의 복구, 물품 및 장비 지원, 수업과 연구 기자재 도입 등이 이루어지면서 서울대학교 발전의 기틀이 되었다. 미네소타 프로젝트에 힘입어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한국 전반의 여러 학문분야의 수준이 향상되었다. 인적 물적 토대의 확보로 연구기반이 확충되었고 집중 지원을 받은 공업 농업 의학 부문에서는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져 1960~1970년대 산업화의 기반이 되었다"고 했다
권이혁 장관
미네소타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명이 권이혁 서울대 15대 총장이었다.
권총장은 경기도 김포출신으로서 2020년에 작고를 했다. 그는 서울대 15대 총장, 문교부장관, 보건사회부 장관, 환경차 장관을 지냈고미네소타 주립대학교 의대에서 보건학 석사학위를 마쳤다.
그의 보건학이 전국민의 건강을 위하는데 의료보험제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을 의료강국이 되고 국민들의 생명을 연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사망 나이의 전체 평균은 83.5세이다.
교육자 연수교육 체제개발에 역점을 두어
권장관은 1970년대 초까지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장직을 수행하면서(1970~1976), 한국의학교육 체제의 전면 개편을 위한 연구 사업을 추진했다. 교과과정 개편은 물론, 특히 학습 및 교육원리에 대한 교육자 연수교육 체제개발에 역점을 두었다. 모두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교육받은 것이다. 주요 저서로는 ‘전염병관리’(1962), ‘공중보건학’(1963), ‘인구와 보건’(1967), ‘도시인구에 관한 연구’(1968), ‘최신보건학’(1978), ‘보건인구학총론’(1984) ‘인구보건환경’(2004), ‘온고지신’(2007) 등이 있다. 모두 미네소타에서 공부한 보건학의 영향으로 그는 한국보건학을 정립했다.
홍창의 박사
20세기 미네소타 대학교의 획기적인 발전은 이 대학을 의료 혁신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1954년 C. Walton Lillehei와 F. John Lewis는 교차 순환을 이용한 세계 최초의 성공적인 개심술을 시행했다. 이 개심술을 그대로 한국에서 최초로 시행한 사람이 서울대학교 병원장이었던 홍장의 박사이다.
홍박사는 미네소타 대학에서 배운 것으로 1959년에는 심실중격결손(ventricular septal defect, VSD) 및 비청색증형 폐동맥협착(pulmonary stenosis, PS)이 있는 8세 남아를 진단하여 한국 최초로 개심술(open heart surgery)을 시행하도록 했다.
그는 국내에 심도자법을 최초로 도입했다. 모두 메니소타 의대에서 배운 것이었다.
미네소타 주지사 출신 스테슨이 서울대를 미네소타 대학에 연결
서울대 역사 기록관에 의하면 "미네소타대학이 선정된 배경으로는 공학, 농학, 의학 분야의 우수성, 당시 대외활동본부(FOA)의 책임자였던 스테슨(Harold Stassen)이 미네소타대학 졸업생이자 미네소타 주지사 출신으로 국제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등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미네소타주는 기독교가 70%
그렇다면 미네소타 주자사 출신은 왜 국제교육에 관심을 가졌는가? 미네소타 주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미네소타주는 카톨릭을 비롯한 기독교가 60%를 넘고 있다. 다른 주와 달리 루터란 출신들이 23%를 차지한다.
미네소타와 스칸디나비아 사람들
미네소타중에 개신교, 특히 루터교신도들이 많은 이유는 스칸디나비아와 독일 루터교 이민자들이 경제적이고 종교적인 이유로 북부유럽의 날씨와 가장 알맞는 미네소타주에 뿌리를 내렸다.
미네소타주로의 이주, 경제적 종교적 이유
이러한 연고로 1850년에서 1930년 사이에 25만 명이 넘는 스웨덴인들이 경제적인 이유때문에 미네소타로 이민을 가기도 했다.
그중 일부는 스웨덴 국교회 의 불관용을 피해 종교적 자유를 찾아 이주하기도 했다. 이들과 미네소타에 정착한 다른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여러 개의 독립적인 루터교 교단을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침례교, 감리교, 성공회, 선교언약교회도 세웠다.
루터교의 특성
북유럽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군주와 국가가 루터교를 받아들이면서 국가교회 형태가 발전했다. 루터교는 북미에서 국가종교이다.
북유럽의 루터교회는 복지국가와 공공서비스에 가까운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고, 미국의 루터교회는 민간 사회복지기관·병원·학교·입양기관을 통해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입양도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표시
루터교에서 사회봉사는 “선행을 많이 해야 구원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로 이웃을 섬긴다는 구조이다.
루터교는 입양과 돌봄을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을 이웃에게 확장하는 행위로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도 양자됨을 받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입양해서 잘 돌보는 것이 하나님의 소명에 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상생활의 소명
루터교의 독특한 공헌 가운데 하나는 일상생활의 소명(vocation)에 대한 강조가 있는 이는 성직자나 수도자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부모·교사·의사·공무원·사업가·사회복지사 등 각자의 직업과 가족관계에서 이웃을 책임 있게 섬길 수 있다고 본다.
입양과 사회봉사, 교육 중시
이 관점에서 사회봉사는, 가난한 사람과 노숙인을 위한 지원, 난민과 이주민을 위한 구호 및 정착 지원, 병원, 요양원, 장애인 시설 운영, 아동보호, 위탁가정, 입양 지원, 교육과 직업훈련, 재난 구호와 평화 구축, 인권, 아동 보호, 사회적 약자의 권리 증진이다.
루터교세계연맹(LWF)은 디아코니아, 즉 교회의 봉사 사역은 정의·평화·화해·인간의 존엄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난민과 분쟁지역 아동의 교육·식량·보호·심리사회적 지원에도 관여한다. 루터교는 디아코니아 사역을 강조한다.
양자됨과 입양
미국의 루터교 기관들도 갈라디아서 4장과 로마서 8장의 “양자 됨”을 입양의 신학적 근거로 제시하며, 출산이 결혼과 가족의 중요한 축복이지만 가족의 의미가 생물학적 출산에만 제한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입양관이 한국아이들을 많이 입양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한인 아이들을 미국에서 가장 많이 얍양을 한 주는 미네소타 주이다. 약 18,000여 명이 살고 있다. 그들의 입양은 자신들의 양자됨의 신학적 실천이다.
루터교의 사회봉사는 은혜의 교리, 이웃 사랑, 일상의 소명, 교회의 공적 책임이 결합된 형태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전쟁, 빈곤, 질병, 이민, 산업화로 부모를 잃거나 보호받지 못한 아동이 많았다. 루터교회는 당시 고아원과 아동보호시설을 설립하거나 운영했고, 이런 시설이 훗날 위탁보호와 입양기관으로 발전했다.
미네소타 프로젝트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가난한 나라의 교육 프로젝트로서 루터교도들 일상생활의 소명의 일부분이다. 루터교 사회봉사는 개인적 자선과 함께 사회구조의 불의, 전쟁, 빈곤, 교육, 차별의 문제도 다루려는 경향이 있다.
미네소타 대학의 슬로건
미네소타 대학은 학생들이 세계가 직면한 큰 도전에 대해 대비할 준비를 시킨다고 했다. 즉 세계가 직면한 고난과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미네소타 대학교 트윈 시티 캠퍼스에서는 우리 모두의 일하는 방식과 삶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을 추구합니다. 우리는 학생들이 우리 주와 국가, 그리고 세계가 직면한 큰 도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준비시킵니다. 또한 학생, 교수진, 직원으로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미네소타 전역의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미네소타대학과 서울대
미네소타 대학은 기독교 대학은 아니지만 루터교 정신에 입각하여 세상의 약자들을 돌보는 학교이다. 이러한 기독교의 정신이 서울대학교 교수와 연수자들에게 8년 동안 영향을 주어 서울대학교가 일본학풍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첨단의 미국학문을 배우는 길이 열렸던 것이다.
스테슨(Harold Stassen)이라는 미네소타대학 졸업생이자 미네소타 주지사 출신이 전 세계 약자까지 돌보는 개신교 신앙으로 서울대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결국 서울대도 예수그리스도의 그림자가 덮여있는 것이다.
알이랑 서울대학교
서울대 교수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반도체 메모리 강자, 방산무기 강자, 차량 강자, 조선 강자, 농업 강자, 의료 강자가 되지못하였을 것이고, 미네소타의 보건학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83.5세까지 살지 못하였을 것이다.
강제 이주된 중앙아시아에서 함께 한 하나님이 서울대학교에도 함께 한 것은 아닐까? 서울대학교에도 함께 하였다면 이 민족의 산업화의 토대가 된 '알이랑 서울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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