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성공의 원인은 고려사범학교

10년동안(1927-1936) 교원 324명 배출

편집인 | 입력 : 2026/07/07 [23:43] | 조회수: 305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에 가서 주변인들의 생활이 아니라 상부계층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교육과 신앙의 힘이었다.

고려인들은 이미 연해주에서 약 30%의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1864년부터 러시아 정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심지어 세례까지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의 신앙생활은 공산국가의 시책에 따라 공적인 활동은 어렵고, 개인신앙의 자유에 따라 주로 가정에서 이어져 왔다. 그 결과 고려인들이 가는 곳마다 알이랑의 하나님이 함께 했다.   

  

이외에 고려인들은 교육을 강조하여 1937년 강제 이주되기까지 연해주에는 약 380개의 교육기관이 있었다. 중앙아시아로 간 많은 고려인들이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거의 교육을 받아 러시아를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배은경, 한국외국어 대학교 교수

 

특히 고려사범전문학교는 고려인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많은 교사를 양성했고 이들이 고려인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1927년에서 1936년까지 10년간 고려사범학교 정규과정 졸업생은 324명이었다."

 

  


324명 중의 한 명이 카자흐스탄 대학교 박일 교수이다.  


그는 김일성대학에 부총장까지 역임을 했다. 그는 1911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출생한 사람으로 그의 아버지는 김좌진장군과 함께 청산리 전투에서 독립군으로 활약을 하고, 그는 1924년부터 1926년까지 북만주 간도 용정의 동운중학교에서 수학했고 1929년 연해주 고려사범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졸업을 하고 러시아로 유학을 갔다. 거기서 막스 레닌주의 철학을 전공한다.

 

1933년 레닌그라드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1940년 철학과를 졸업하여 박사학위를 얻었다.

1940년부터 1946년까지 소련국립종합대학(르노모소프 모스크바국립대학) 철학과 교수로 근무하다가, 1946년 12월부터 1948년 3월까지 김일성종합대학 부총장을 역임하고 이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북한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원인은 북한이 김일성 열전을 써달라고 해서 거부하니 카자흐스탄으로 가서 1948년부터 1987년까지 약 40년 동안 카자흐스탄 종합대학 철학 교수로 재직했다. 이처럼 그는 러시아, 북한, 카자흐스탄에서 교편 생활을 했다.

고려사범전문학교 출신이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김일성대학, 카자흐스탄 대학에서 철학교수를 역임한 것이다.

 

그는 김일성대학에 있었을 때 "김정일아 들어라, 너의 아버지가 내게 막스 레닌을 배운 사람이다. 어서 삼팔선을 넘어 와서 남한과 손을 잡고 통일을 해라"고까지 훈계하여 북한으로부터 쫏겨난 사람이다.  후에 그는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다.

 

 


박일교수는 자신에게 
 북한이 김일성 열전을 쓰라고 해서 "노트 4권 분량으로 작업했지만 학자의 양심으로 책을 쓰지는 않았습니다"고 하면서 "그래서인지 소련 공산당과 김일성은 48년 3월 그를 카자흐스탄으로 내쫓았고 다시는 북한 땅을 밟지 못했다"고 했다. 

 

이외에 중앙아시아에서 교수로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카자흐스탄 최고의 지질학자도 고려인이다. 

 

강제로 이주된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이 성공한 것은 고려사범학교 교사들의 교육열때문이다.

한국외국어대학의 배은경교수는 '니콜리스크-유수리스크 고려사범전문학교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기고했다.  

 

이 논문에 의하면 "교육은 고려인들에게 삶과 정신영역에서 일종의 혁명이었다"고 적고 있다. 

 

  

 

  

 

연해주로 간 고려인들은 소비에트 교육으로 문맹에서 벗어났고 현대 교육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23년 당시 당시 고려인 남성의 33%, 여성은 8%만이 한글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거의 까막눈이었다. 

 

1927년에 최초로 교원양성을 위하여 고려사범학교가 설립되었다.  

 

  


1920-30년대 고려인 교육자 양성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은 니콜리스코-우수리스크 고려사범전문학교였다. 

 

  

 

이 학교는 1924년 혹은 1927년에 설립되었고 7년제 학교졸업생을 대상으로 입학을 허용했다. 중학교, 고등학교의 7년을 마쳐야 했다. 

 

  


1927-1936년까지 10년 동안 정규과정 졸업생은 324명이었다. 즉 10년 동안 사범대를 나온 교사는 324명이었다는 것이다. 324명이 고려인들의 교육을 책임지었다.  

 

  


제정 러시아시절에는 러시아로만 수업을 하였는데 막스 레닌 혁명정부 이후에는 한글로의 수업도 가능했다.  공산주의 정권이라도 개인 신앙 양심의 자유를 인정했고, 교육을 존중했다.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개인 신앙 양심의 자유와 스탈린 정부의 교육열 때문이다.


조선인들은 누구나 교육의 한이 있었다. 조선 시대는 양반 자제들만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한글도 모르는 문맹자로서 지냈다.

 

  

 

1917년 10월 혁명의 주역들은 새로운 교육령을 선포했다. 개방적, 비종교적, 의무교육, 지방자치, 소수민족의 모국어 수업, 전문성 존중, 소수민족의 교육권보장, 교육의 창의성 존중, 의무 교육 등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혜택이었다.  

 

 

  

 

스탈린권력은 교육의 실용화를 강조했다. 즉 노동하면서 교육하는 것이다.  

 

  

 

1924년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는 170개, 학생은 11,111명, 교사는 340명이었다. 블라디보스톡의 고려인 학교는 지역 전체의 8.5%를 차지했다. 

 

  


초등학교(일급학교) 167개 중 63개 학교에서 러시아를 가르쳤다. 

 

  

 

1930년이 되어서 일급학교(초등학교) 학생수는 약 23,000명이고, 중등학교는 2,265 명이고, 전문학교 550명, 노동학원 150명 등이다.

1세대의 자녀들은 대부분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937년 강제 이주된 사람들은 주로 1.5세 아니면 2세로서 교육받은 사람들이었다.    

 

 

  


1934년 고려인 초등학교수는 252개, 학생 수는 11,111명 이었다. 

 

  


교육은 이론과 실습을 병행했다.  

 

  

 

그 당시 통신 수업도 있었다. 

 

  

 

우수리스크 고려사범전문학교는 러시아어와 고려어 2개의 언어로 수업이 진행되었고, 국어, 지리, 역사는 고려어, 나머지 과목은 러시아어로 가르쳤다. 고려사범학교를 졸업하면 두개의 언어를 알 수 있었다. 

 

  


이 학교에서는 사회, 국어, 지리학, 과학, 물리, 화학, 수학 등 서구의 학문을 가르쳤다.  

 

  


1931년 고려사범학교 재학생수는 250명까지 늘어났다. 

 

 



 

 

고려사범학교는 1934/35학년도에는 37명을 졸업시켰다.  

 

  

 

1936년까지 244명의 교원을 배출하였다.  

 

  



  


고려인들은 특히 수학을 잘하였다. 머리가 좋다는 증거이다. 

 

  


고려사범학교는 1927-36년까지 32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졸업생들은 학교교사뿐만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이처럼 고려인 교사들의 활동을 하여 고려인들은 문맹에서 깨나났던 것이다. 고려사범학교는 카자흐스탄으로 가서 크질 오르다 대학으로 이어졌다.    

 

  

결론


일찍부터 서구의 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고려인들이 강제 이주를 해도 스포츠인, 교수, 학자, 경제인, 법조인 등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서 유능한 고려인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최고의 축구 선수, 최고의 감독, 최고의 체조 선수를 배출했다.  고려인 넬리 김은 금메달 5개를 거머쥐었다. 천일손은  너무 뛰어나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자문으로 초청할 정도였다. 홍명보 감독은 불행하게도 고려인 천일손 북한 감독보다도 못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알이랑 민족은 항시 신앙이외에 교육이 뒷받침되었다. 1885년 한국에 온 서구의 선교사들도 항시 교회와 학교를 세워 신앙과 교육을 중시하였다.

 

한반도에서는 서구의 선교사들을 통하여 교육과 신앙이 강조되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강대국으로 이끌었고, 중앙아시아에서도 고려인들은 으뜸되는 민족으로서 발돋움하였다. 신앙과 교육이 있는 민족은 광야와 사막을 가도 망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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