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신앙유산답사기(러시아5)

수이픈 강은 슬픈 강

편집인 | 입력 : 2026/04/23 [09:25] | 조회수: 64

 

 

우수리스크는 블라디보스독과 함께 러시아 연해주(연해) 한인 거주지와 한국 독립운동의 핵심 거점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투쟁·외교·교육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지역이다.  

 

  

우수리스크는 블라디보스독에서는 약 100키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기차로 2시간이 걸린다. 현재 고려인 문화센터가 있을 정도로 한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현재도 약 1만 5,000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우수리스크(Ussuriysk)는 
러시아 연해주 남부에 위치한 제2의 도시로, 블라디보스독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시베리아 횡단철도 요충지이다.

포세이트 근처 지선허 마을에 1863년 마을을 설립한지 3년이 지난 1866년 설립된 이곳은 과거 발해 영토이자, 독립운동가 이상설, 안중근, 최재형 선생의 유적과 고려인 문화센터가 있는 한민족 항일 운동의 중심지였다. 

  

  

 

 

 고려인 문화인센터

특히 고려인문화센터에는 연해주의 이주역사와 항일투쟁에 대해서 전시하고 있다. 민족혼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안에 들어가면 항일의병에 관한 내용이 있다.  고려인은 1863년 첫 발을 연해주에 내렸고, 1905년 을사늑약 이후 항일투쟁의 중심지가 되었다. 

 

  

연해주는 1937년 스탈린에 의행 강제이주 전까지 조선인들에게는 관리들의 수탈과 착취가 없었기 때문에 일종의 가나안이자, 일제에 대해서 항의하는 의병활동의 중심지였다.

고려인들은 다른 민족과 달리 벼농사에 있어서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불모지의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러시아의 한인들의 이주는 일단 성공했다. 이주는 계속 늘어났고 1937년까지 약 17만 명이 이주를 해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특히 우수리스크에 많은 고려인들이 몰린 것은 근처에 수이푼 강이 있었기 때문에 기름진 밭과 논농사를 해서 많은 수확을 거둘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한민족들은 러시아정교회에 힘입어 신앙생활을 하기도 했고, 학교에서 서양식 공부도 하여 한반도에서 겪지못했던 새로운 삶을 살았다. 

 

 

안중근

 

안중근이  우수리스크에서 열차를 타고 하얼빈까지 가서 언론기자로 위장하여 이토오 히로부미를 쏘았다.  우수리스크는 안중근이 살아서 마지막으로 떠난 열차역이 있는 의미있는 곳이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역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오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사살했다. 

 

  


이토오 히로부미의 아버지는 림세장으로 1850년 일본으로 넘어간 조선인이었다. 이토오 히로부미의 이름은 림춘모였다. 그는 한복을 입고 가족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조선인이 조선인을 쏜 것이다. 
 

이상설

 

수이푼강옆에는 이상설의 유허비가 있다.  

 

 

이상설은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이 국권을 박탈당하자 이를 반대하는 상소투쟁을 벌였다. 그 뒤 만주로 망명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했다.

1907년에는 이준,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로 파견되어 독립을 호소했다.

 

  가운데가 이상설이다. 

 

이상설은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다가 1917년 망명지인 연해주 우스리스크에서 병사했다.

죽기 전에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했으니, 몸과 유품은 불태우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에 따라 시신은 화장했고, 유해는 고려인들이 슬픈 강이라 부르는 수이푼강에 뿌렸다. 그래서 그의 유허비가 수이푼강 옆에 있다. 수이푼강은 그의 유해에 힘입어 28년이 지나서야 광복의 물을 가져왔다.    

 

 

이상설은  1907년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어 활동하였고, 이후 해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이바지하였다.

연해주 블라디보스독에서 1911년 권업회 창설과 1914년 러일전쟁 10주년 기념일을 기하여 대한광복군 정부 수립을 주관하여 정통령에 선임되기도 했다. 

 

이처럼 우수리스크는 최재형이 마지막으로 잡힌 곳이며, 안중근이 마지막으로 거주하였던 지역이고 이상설이 마지막으로 병사한 슬픈 지역이다.

최재형도 여기서 1920년 4월 5일, 일본인 보호를 명분으로 파견한 일본군에 체포되어 63세의 나이로 총살당했다. 그러므로 수이푼강은 눈물 덩어리를 갖고 흐르는 슬픈 눈물의 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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