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지일교수, '존경하는 문선명(Reverand Moon)" 활자체 부각해서 인용존경하는 문선명은 개척자의 외로운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을 깨달았다존경하는 성직자 문선명(Reverend Moon) 인용
성직자에게는 미국에서 의례적으로 Reverand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타락한 교주에 대해서 '존경하는 문선명 교주님' 이라는 단어를 여과없이 수용하는 것은 자신의 주장의 또 다른 표현으로 긍정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영어에서 Reverand는 숭배하거나 존경할 가치가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보통 성직자 앞에 붙이는 용어로 '존경하는 성직자'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Reverend'는 숭배하다, 존경하다를 의미하는 'revere'에서 파생한 명사형이다.
그는 해외박사학위신고논문 62p에서 문선명에 대해서 존칭을 하는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인용의 가치가 없는 구절이다. 더군다나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사람에 대해서 존경하는 문이라고 존칭을 하는 내용을 인용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Reverand Moon은 '존경하는 문선명 교주님'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활자체를 크게 하여 '존경하는 문선명'을 그대로 인용하여 사실상 긍정하고 있다. 비판이 한 줄도 없기 때문이다.
일제통치말엽에 문선명은 다른 기독교인들을 접촉해서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그들과 함께 일을 했다. 미국기독교선교사들은 이러한 젊은 선생의 말을 들었고, 그를 지방설교가로서 무시했다. 그들 회원과 함께 한 한 젊은이의 호소에 시기하는 한국목사들은 문선명을 거절했고 잘못된 교리를 가르친다고 그를 비난했다. 기독교교회들은 문선명을 수용하는데 실패했고, 존경하는 문선명(REVERAND MOON)은 개척자의 외로운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깨달았다.
원리강론도 그대로 인용
이 외에도 탁지일은 논문의 형식과 내용상 원리강론에 집착하고 원리강론에 대해서 홍보하는데 주력하고 한 줄도 비판하지 않았다. 원리강론으로 시작하고 원리강론의 내용은 한글 원문 그대로를 인용한다. 원리강론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통일교의 사상을 무차별적으로 인용하여 통일교홍보논문임을 방불케 하고 있다.
존경하는 문선명의 한국재림
논문은 존경하는 문선명이 한국에서 재림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논문 맨앞에 실은 내용은 원리강론중의 하나로서 제2의 메시야인 존경하는 문선명이 한국에 도래하는 내용을 싣고 있다. 메시야인 문선명의 한국재림을 논문 맨 앞에 싣는 것은 개신교학자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결론에도 원리강론이나 통일교에 대한 비판이 한 줄도 없다. 탁교수는 언론와의 인터뷰에서 비판은 독자들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결론을 보면 통일교도가 쓴 것처럼 보인다. 원리강론과 통일교가족에 대한 홍보논문이다.
존경하는 문선명의 피
알다시피 원리강론은 예수의 피 구원은 실패하고 두번째 예수인 존경하는 문선명의 피로 인한 구원을 강조한 통일교의 성경에 해당하는 책이다. 그런데 개신교 학자로서 원리강론은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원리강론을 원문그대로 드러내는 방법까지 구사하면서 원리강론을 홍보하고 있다. 한 절의 성경인용이나 비판이 없이 원리강론의 내용그대로를 홍보하고 있다.
만일 탁교수가 원리강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개신교 학자로서 한 문장이라도 비판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의 논문을 보면 처음부터 원리강론의 메시야로서 문선명의 한국재림설을 강조하고, 논문 내용에도 성경은 하나도 인용하지 않고, 원리강론만 인용하고 홍보하는 인상을 주고 있고, 나아가 문선명과 관련한 내용은 활자체까지 부각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여 문선명을 찬양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 필자가 자신의 논문을 왜곡편집했다고 언론에 버젓이 허위진술까지 하고 있다.
그 언론이 제기한 것은 한마디로 ‘왜곡과 조작’이다. 모든 것을 이 자리에서 밝히지는 못하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악의적인 편집에 관한 것도 있다. (자신의 논문 자료를 보여주며) 실제 나의 박사학위 논문과 출판저서 어떤 곳에서도 강조하기 위하여 글자 크기를 크게 한 흔적이 없다.
또한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박사학위제출용과 신고제출용의 논문이 다른 것 역시 통일교와의 타협의 가능성이 있다고 합리적인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 논문의 형식을 벗어나면서까지 문선명관련 글은 30포인트로 부각시킨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장장 5페이지에 걸쳐서 문선명 글만 부각시키는 것이다. 67, 79, 80, 161, 162 페이지의 글을 부각시킨다.
존경하는 문선명 인용과 활자체 부각
일제통치말엽에 문선명은 다른 기독교인들을 접촉해서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그들과 함께 일을 했다. 미국기독교선교사들은 이러한 젊은 선생의 말을 들었고, 그를 지방설교가로서 무시했다. 그들회원과 함께 한 한 젊은이의 호소에 시기하는 한국목사들은 문선명을 거절했고 잘못된 교리를 가르친다고 그를 비난했다. 기독교교회들은 문선명을 수용하는데 실패했고, 존경하는 문선명(Reverand Moon)은 개척자의 외로운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깨달았다.
"문선명의 선언은 통일교의 잘 조직된 진정한 부모중심적 행정시스템에 의하여 장려되었다. 이러한 시스템은 수직적으로 진정한 부모에 촛점을 두었고, 또한 수평적으로는 세계평화통일가족연맹의 수많은 보조적인 기구와 관련이 있었다. 먼저 지상에 하나님나라를 세운다는 모든 계획은 기독교지도자들인 진정한 부모, 문선명과 한학자에 의해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모든 인류의 생애를 위한 길'이라는 연설에서 문선명과 한학자는 메시야와 함께 있는 진정한 부모의 위치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어서 선한 부모의 자식들이 되게 하고 그와 함께 하나가 되게끔 중심역할을 하신다."
탁지일은 문선명의 부인인 한학자가 메시야와 함께 있는 진정한 부모의 지위를 갖고 있다고 인용하면서 어떤 비판도 하지 않고 그대로를 인용하고 있다. 존경하는 문선명이라든가 메시야와 함께 있는 한학자라는 말을 인용하는 것은 통일교의 사상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다음의 논문 인용도 문선명부부의 신적위치를 인정하고 있다. 문선명을 우상화시키거나 신적위치에 있는 글에 대해서는 활자체를 크게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선명의 첫아내가 매력적이었다는 사실을 활자체를 크게 하여 부각시키기도 한다.
존경하는 문선명, 학문성 높은 논문
서울장신대 정병준교수는 이 논문이 학문성이 높은 논문이라고 극찬했다. 문선명을 부각시키고 원리강론을 비판하지 않고 홍보한 논문이 학문성이 높은 논문인가?
존경하는 문선명, 이사장이나 총장도 존경?
이러한 논문이 학문성이 높은 논문인지, 개신교학자로서의 적절한 논문인지 부산장신대 김용관총장과 민영란 이사장은 논문윤리 조사위를 조직해서 이 논문에 대해 장로교정체성을 가진 교수의 논문인지, 통일교홍보논문인지를 냉정한 평가를 하기를 바란다.
개신교학자로서 예수의 구원사역이 실패하고 제2의 메시야인 자신이 구원을 성취했다고 하는 문선명에 대해서 "존경하는 문선명"이라는 인용과 "메시야와 함께 하는 참부모로서 문선명과 한학자"의 비판없는 인용이 과연 적절한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문선명의 피를 강조하는 원리강론을 맨앞에 싣고, 존경하는 문선명과 메시야아 함께하는 한학자 문선명 부부를 여과없이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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