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위배되는 법을 만들어 놓고 법대로 하라?

재판국원은 법과 양심과 성경에 부끄럽지 않은 재판을 해야

이정환 | 입력 : 2018/02/26 [04:23] | 조회수: 1076

▲     © 기독공보

 

 

100주년 기념관의 형태

 

그동안 신병을 빙자하여 두문불출 하다가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이전에는 멀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시외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종로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 것이 나이 탓인가 보다. 예전에는 웅장해 보이던 100주년 기념관이 크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지만 빛바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빛을 잃은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는듯하여 씁쓸하였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니 언론에서나 보았던 광경이 눈에 펼처 진다. 넓은 벽면마다 ‘세습반대, 공정재판’이라고 쓴 작은 포스타가 가득 붙어 있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웅성댄다. 재판국이 모이는 날이다. 저마다 사건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군상을 이룬다. 같은 교회를 출석하는 교인들이 동료가 아닌 적이 되어서 굳은 표정으로 서로 눈길을 피한다. 참 희한한 광경들이다. 예수님은 ‘하나가 되라’고 하시고 ‘하나 되게 하소서’ 기도 하셨는데 인간적인 이해관계가 예수님의 말씀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린다.

 

동남노회건과 총회재판국원들 

 

서울동남노회와 명성교회 관련 송사건의 판결일이 가까이 옴으로 총회재판국의 시름도 깊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인지 재판국원들의 표정도 굳어 있는 듯하다. 한 재판국원은 “매일 걸려오는 전화며 들어오는 휴대폰 문자로 진저리가 쳐 진다”고 했다. 왜 안 그렇겠는가! 허구헌 날 명성교회를 비난하고 욕하는 글을 써대는 사람들과, 무슨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신학생들과 교수들이 모여서 ‘세습반대 기도회’를 열고 있고 일반 언론까지 가세해서 가끔씩 교회를 두들기는 보도를 보면서, 송사를 맡고 있는 재판국원들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어떤 판단을 하든지 한쪽으로부터는 비난과 험한 소리를 듣는 것이 자명하니 ‘진퇴양란’이다.

 

최근에 삼성그룹 관련 사건과 관련하여 그 회사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가 뭇매를 맞고 있다. SNS 의 등장으로 ‘신상 털기’라는 희한한 것이 사람들을 난도질 하고 있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재판관의 판단이, 자기 뜻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인민재판식으로 사람을 난도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신상 털기를 총회재판국원들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법대로 재판하라?  그렇게 판결하지 않으면 각오하라는 협박이다.

 

‘세습반대’라는 피킷을 들고, ‘세습반대를 위한 기도회와 포럼’이라는 것을 하면서 ‘법대로 재판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재판관은 법을 가지고 재판하는 사람이다. 어련히 알아서 법대로 재판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이렇게 막무가내로 ‘법대로 재판하라’고 소리치는 것인가?

 

이들의 소리는 한 마디로 자신들이 주장하는 대로 판결하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판결하지 않으면 각오하라는 협박이다. 곧 자신들의 주장이 법인 것이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이야기인가?

 

법은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규범

 

기독교 목사요, 신학교 교수요, 사명을 받았다는 신학생이요, 주의 종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공의가 무엇인지, 법과 원칙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의문이다. 법은 ‘녹비에 가로 왈 자’가 아니다. 법은 케논(canon)이다. 잣대다. 특정인들의 주장이나 요구를 충족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한 공동체를 지탱하는 규범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무질서와 혼란과 위기가 닥친다. 그래서 법관의 책임이 무거운 것이다.

 

그러니 법만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 한다”고 임직서약을 한다. 법대로 재판하겠지만 그 법을 제대로 적용하고 판단하는 것은 사람의 양심이다. 양심은 인간이 한 쪽으로 기우는 것을 방지하는 추와 같다. 그래서 불법한 행위에 대해서 양심은 언제나 그 반대쪽에 선다. 그래서 항상 균형추의 역할을 한다.

 

사법제도에 있어서 교회재판관은 일반 법관과 달리 재판을 하는 또 하나의 잣대가 있다. 그것은 성경이다. 물론 우리 교단 헌법은 성경을 근거로 만들어지기는 하였지만 성경 전체의 내용을 담은 것은 아니다. 교회재판국원은 성경이라는 잣대에 근거하여 판단해야 한다. 때로는 법이 그것을 허용하고 있고 양심에 마비가 닥쳐도 성경은 움직일 수 없는 판단의 기준이다.

 

재판국원과 그리스도의 문책

 

그러므로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재판국원들은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믿음이 있어야 하며 그것을 전제로 하고 재판국원으로 임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만약 이들이 법과 양심과 성경에 위배된 재판을 하게 된다면 그는 더 큰 재판관이신 그리스도께 심한 문책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피킷을 들고, 기도회를 한다고 하면서, 법대로 재판하라고 소리치지는 못할 것이다.

 

세습방지법은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에 벗어나

 

세습에 대해서 필자는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의 입장이 어떻든 간에 세습금지법은 잘못된 법이라는 것이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해야 한다.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과 객관성이 법을 법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습금지법은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고 더구나 형평성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난 잘못된 법이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담임목사나 장로의 직계비속이나 배우자는 청빙에서 제외 한다’ 이것이 공정한가? 객관적으로 보라, 담임목사나 장로의 아들과 딸은 청빙에서 제외하는 것이 객관적인가? 더구나 미자립교회는 허용이 되고 자립교회는 불허한다는 것이 형평성에 맞는 일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인의 양심에 따라 자신들이 봉사하는 교회의 목사를 청빙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교인의 기본권이다. 그런데 이런 헌법에 위배되는 법을 만들어 놓고 법대로 하라고 소리를 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세습방지법은 헌법에 위배

 

헌법에 위배되는 법은 제정할 수도 없고 제정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다수가 원한다고해서 헌법을 깔아뭉개는 법을 만들어 놓고 이것을 지키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인가? 상위법에 위배되는 어떤 법도 규칙도 제정해서는 안 되고 결정해서도 안 된다. 헌법에 위배되면 모든 것이 무효이다. ‘세습금지법을 만들자고 결의한 제97회 총회결의도 불법이고 무효이며 세습금지법을 만든 제98회 총회의 결정도 모두 무효다. 그래서 제101회 총회헌법위원회는 소위 “세습금지법이 헌법에 위배됨으로 삭제, 개정해야 한다”고 위헌 심판을 한 것이다.

잘못된 단추를 끼우면 옷매무새는 엉망이 된다.

 

아무리 바쁘고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꿸 수는 없다. 그러나 총회는 입법을 하면서 그 법이 적법한지, 헌법에 위배되는지 제대로 논의하지 못하고 정서적 감정을 앞세워 위헌적 법률을 만든 것이다. 헌법에 관한 위헌 판단과 유권해석을 할 수 있는 합법적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공적기관인 헌법위원회가 내린 결정을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고 비난하면 그 교단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세습금지법은 총회가 만들고 헌법위원회에 관한 법은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가? 모두 총회가 만든 법들이다. 그런데 왜 헌법위원회는 잘못되었고 세습금지법은 옳다고 하는가?

 

세습방지법은 교인의 기본권 침해

 

분명히 세습금지법은 교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법이다. 교인의 기본권은 천부인권(天賦人權)이다. 어느 누구도, 어떤 법령으로도 기본권은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 헌법위원회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하는 순간 이 조문은 모든 효력을 상실했고 사실상 죽은 법조문이다. 그런데 죽은 법조문을 가지고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다. 죽었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죽은 법은 법적 잣대가 될 수 없다. 사문화(死文化)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법령이나 규칙이) 조문은 있으나 실질적인 효력을 갖지 못하게 되다”라는 뜻이다. 사문화된 세습금지법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다.

 

동남노회임원선거는 적법

 

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제73회 서울동남노회 임원선거는 위법한 일이 없이 적법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회의 진행이나 방법 등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헌법이나 총회규칙 각 치리회 회의규칙, 서울동남노회 규칙, 총회재판극 판례나 헌법위원회 유권해석 등 어느 것에도 위배됨이 없는 적법한 것임을 다시 확인하였다. 회원이 권리를 포기하고 퇴장하면 투표권은 없다. 기권도 아니다. 기권이란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퇴장 한 사람은 투표 계수에 포함되지 않지만 기권은 유효표가 된다. 서울 동남노회 오후 투표의 기준은 노회규칙에 따라 재석이 기준이다. 오후 속회 숫자가 얼마가 되었든지 속회 정족수에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재석한 회원만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가 계수한 재석이 173석이 이었다. 138명의 회원들이 ‘부회장의 노회장 승계를 반대했다’ 그것이 회의내용의 전부이다. 위법한 내용이 무엇이 있는가?

 

동남노회 비대위의 전략 실패

  

명성교회 청원건을 반대하고 퇴장한 회원들이 패배한 이유는 전략을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다.세습철회를 주장하면 회원들의 지지를 받을 것으로 오판했다. 그러나 회원들은 냉정했다. 옳고 그름을 그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였다. 소위 정상화추진위 회원들은 끝까지 회의에 참석해서 논리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설득했어야 한다. 그리고 표결에 참여해서 그 결과를 지켜보았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권리를 포기했다. 그리고 퇴장했다. 그리고 밖에서 정상화를 부르짖는다.

 

명성교회 세습반대파, 다수의 결의에 승복

 

서울동남노회 일부 회원 목사와 장로들은 명성교회 성도들보다 못한 사람들이다. 명성교회는 김하나 목사 청빙에 무려 26%가 반대 의사를 표했다. 그러나 그들은 밖으로 나가서 정상화를 소리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나는 반대하지만 교회가 합법적으로 청빙을 결의했으니 순종하고 따르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시민의식이다. 자기 뜻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피킷 들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행위는 비민주적인 행위다.

 

그런 면에서 명성교회 성도들은 일부 노회원들 보다 훨씬 성숙한 신앙을 가진 교인들이라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교인들을 선동하려 하고 반대 시위가 일어나기를 바라며 목사든, 장로든, 교수든, 신학생이든, 말로 글로 행동으로 소리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명성교회 성도들에게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세습을 반대하면 세습옹호자? 의견개진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

 

내친 김에 한 마디 더 하겠다. 필자와 같은 사람들을 ‘세습옹호자’라고 비난하고 욕하는 양반들에게 하는 말이니 귀 담아 들었으면 좋겠다. 어떤 사안에 대하여 찬성을 하든지 반대를 하든지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런데 세습을 반대하는 자신들의 주장은 옳고, 찬성하는 사람들은 마치 못할 짓을 하는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삼가기를 바란다. 당신들이 반대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찬성할 권리도 있는 것이다. ‘세습옹호자’라! 참 잘 만든 용어 같다. ‘이단옹호자’ ‘이단옹호언론’이라는 용어를 창조한 사람들이 만든 용어와 꼭 닮았다. 한 배 속에서 나온 것같다. 그러니 세습을 반대하지 않으면 모두 ‘세습옹호자’가 되는 것이다. 참으로 고약한 짓이다.

 

세습옹호자, 이단옹호자 발언자, 스스로 입에 제갈 물려야

 

“사람이 말이 온전하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말에 온전한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스스로 입을 재갈 물리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도 실수가 많으니 우리의 부족함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형제를 향하여 라가라 하는 자마다 지옥 불에 던지 울 것이요”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항상 염두에 두고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가려서 해야 하거늘 함부로 뱉는 말이 스스로를 더럽게 하고 올무에 빠지게 됨을 너나 나나 기억해야 한다. “사람은 입술의 열매를 먹고 사는 존재”라고 한 잠언 기자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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