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의 예수를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들

총회장, 사무총장, 기독교방송관계자들을 중심으로

편집인 | 입력 : 2026/06/02 [08:36] | 조회수: 39

아침이슬과 금관의 예수는 김민기의 작품이다.

 

  

 

 

 

 

김민기는 평생 자신은 뒷 것이고, 배우들은 앞 것이라고 하면서 배우들은 드러냈고 자신은 뒤에 숨었다. 총회관계자들이 김민기의 삶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들은 앞 것에 목말라 있고, 뒷 것은 하잖은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김민기는 뒷 것에 머물고 싶어 TV의 출연까지 거부하였을 정도이다. 그는 금관의 예수보다 아무도 모르는 채 어둠을 극복하면서 아침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아침이슬이었다. 금관의 예수는 창녀의 고해성사를 거부하는 사제를 다룬 김지하의 작품의 일부이다.

 

김민기가 여기에 곡을 붙였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을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찾아 헤메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하소서! 

 

  

 

김민기는 금관의 예수보다 아침의 이슬을 더 좋아했다. 아침의 이슬은 원래 저항가가 아니었다. 어둠을 통해 알알이 맺힌 설움이 아침동산과 태양을 통해 사라진다는 가사로 단지 양희은에게 준 노래이다. 김민기는 아침이슬을 통하여 희망을 가졌다.    

 

 

 

 지하철 1호선

 

7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김민기의 지하철 1호선은 힘없고 약한 어둠속에서 살아간 민중과 노동자, 빈민들을을 대변한 우리시대의 아침이슬이었다. <지하철 1호선> 은 지난 1994년 초연된 이후 15년간 공연되며 2021년까지 72만 여명의 관객과 만났다.

 

 

  

 

<지하철 1호선>은 한국 사회와 소시민들의 모습과 정서를 면밀히 그려 낸 작품으로, 한국 뮤지컬계의 교과서로 불리며 역사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연변처녀 '선녀'의 눈을 통해 실직가장, 가출소녀, 자해 공갈범, 잡상인 등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그려내며 20세기 말, IMF 시절 한국사회의 모습을 풍자와 해학으로 담아내면서 희망을 갖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들은 모두 어둠을 이겨내는 아침이슬이었다. 

 

  

 

  

 

학전이라는 극단을 통해서 많은 스타들이 배출되었다. 1991년 개관하여 33년간 한국공연 문화의 못 자리 역할을 했다. 

 

  

 

  

 

뒷 것 김민기가 없었다면 앞 것, 실미도의 설경구, 국제시장의 황정민, 김윤석, 김광석, 유재하, 양희은은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김민기가 배출한 인물들이다. 그는 자신을 뒷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원치 않았다. 자기 문하생들이 앞 것이 되는게 그의 기쁨이었다 

 

 

 

 

 

 

 

  

  양희은

 

이들은 모두 태양빛을 기대하는 아침이슬들이었다. 

아침 이슬보다 금관의 예수만 찾는 총회장과 사무총장

 

예장통합 부총장후보들의 선거공약이나 발언을 보면 항시 총회를 섬기고 총회장을 잘 보필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려운 교회들을 잘 돌보고 관심을 갖겠다는 것이다. 즉 금관의 예수보다  아침이슬을 찾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총회장이 되면 주로 대형집회나 대형교회 축사나 격려사, 설교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 금관의 예수를 추구하고 있다. 

 

 

 

 

사무총장은 주영광교회에서도 전화를 하면 받고 2026. 1. 25 설교를 했다.  그러나 아침이슬처럼 힘없이 사라지는 은퇴 노인 최경구 목사같은 사람의 전화는 받지 않는다. 물론 힘없는 필자의 전화도 받지 않는다. 이제 필자도 그들의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그러나 그들은 명성교회나 다른 교회에서 설교나 인터뷰 오라고 하면 속히 받는다.  금관의 예수를 추구하는 것이다.  

 

 

 

 

힘없는 개인이 전화를 하면 받지 않아도 남선교회같은 대형 단체나 대형교회, 대형 언론이 전화를 하면 속히 받고 긴밤을 지새우며 풀잎마다 맺힌 연약한 아침이슬과 같은 사람의 전화는 받지 않는다. 영광과 명예의 상징인 금관의 예수의 전화만 받는 것이다.   

 

이번에 최경구 목사가 여러번 사무총장과 총회장에게 전화해도 받지 않고 명성교회와 C 채널의 전화만 받는 행위는 긴밤 지새우고 추위를 견뎌낸 아침이슬보다 금관의 예수를 찾아간 행위이다. 

 

금관의 예수를 찾는 C채널 

 

C 채널도 금관의 예수를 추구해서는 안된다. 명성교회 회복에 가장 공을 세운 사람 중의 하나인 최경구 목사에 대해 한번도 인터뷰를 요청하지 않은 것은 최경구 목사가 금관의 예수가 아니라 아침만 되면 힘없이 사라지는 이슬방울이기 때문이다. 

 

C 채널의 공정성 상실

 

C 채널은 명성교회를 위해 한번도 공헌하지 않고 오히려 반명성편에 서있던 최상도 목사를 인터뷰하고 최경구 목사를 무시하는 것은 공정성의 결여이다.

 

물론 예장통합교단 사무총장이라는 지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약자도 방영하는 것이 방송의 역할이다.

 

C채널은 친명성운동과 관련한 뉴스는 한 편도 내보내지 않았다. 언론의 객관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방송이 공정성을 추구한다면 최경구목사의 인터뷰나 예정연 활동상도 내보내야 했다.  

 

이 사회의 문제는 공정의 문제이다. 힘있는 자들이 모든 권력을 거뭐지는 것이다. 교회나 기독교방송에서까지 힘있는 자가 있다. 그러나 방송마저 이들만 위주한다면 이미 공정성을 상실한 것이다. 성경은 약자를 중시했다. 

 

우리 사회는 법의 공정성이 사라지다보니 입법독재가 있는 것이다. 대통령 한 명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회다수를 밀어부쳐서 법으로 검찰청까지 폐지해 버린다. 방송 역시 특정인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식과 공정성이 있어야 한다.

 

CBS는 일방적으로 반명성편에 서서 방송을 했다. 지금에 와서 볼 때 모든 것이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었고, 합법이 아니라 정서적 주장에 불과했다. 그래도 CBS는 한 번의 사과도 하지 않았고 사장이 명성교회에 와서 인사를 한다. 

 

C 채널 역시 공정성과 상식을 상실했다. 명성을 위해서 발로 뛴 최경구 목사를 무시하고, 반명성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을 방송에서 띄우는 것은 공정성과 상식의 결여이다. 다음의 글에 최상도는 일치한다고 서명을 했다.  

 

2. 교회 세습은 교회를 사유화하는 행위입니다.

 

(대형)교회의 세습은 사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특정인이 자본과 권력을 대물림하는 행위 입니다. 이 행위는 교회의 공교회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입니다. 이 행위는 교회의 사회적 공공성도 훼손시켰습니다. 교회에 대한 사회의 신뢰도가 바닥으로 추락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마 5:13-16)이 됨을 부정함으로써 선교가 막혔습니다.

 

  

 

 

  

 

  

  

공정성이 결여된 방송은 대중들로부터 사라지고 시청률이 최하위로 떨어지는 것이다.

 

방송이 금관의 예수만 추구하다보면 어느날 이슬방울처럼 소멸하게 된다.  최경구 목사는 교단의 수백명 총대와 목회자들을 동원하여 명성교회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C채널은 사무총장이 되었다고 해서 최상도는 바로 인터뷰하고 최상의 대우를 한다. 반대로 명성을 위해서 일했던 사람들은 한 명도 인터뷰하지 않았다.

 

이것이 C채널의 입장이라면 명성교회가 앞으로 또다른 사태가 발생한다면 누가 명성교회를 위해서 일하겠는가? C채널은 명성교회 회복을 위해서 일했던 전국의 수많은 총대들은 "나 몰라라" 하고  기억하지 않고 있다. 명성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친명성은 무시하고 반명성은 우대하는 C 채널 

  

이처럼 C 채널이 명성교회의 회복을 위해 수년 동안 수고한 사람은 무시하고, 오히려 반대했던 사람이 교단 사무총장이 되었다고 해서 인터뷰를 하는 것은 공정성을 상실한 것이다. 

 

C 채널이 아침이슬보다 금관의 예수를 추구하기 때문에 교단의 힘있는 사람만 인터뷰하는 것이다.

 

금관의 예수를 추구하는 C채널

 

쉽게 말하면 대형교회 목사나 총회임원이 아니면 명성교회를 위해 죽도록 충성해도 취재나 인터뷰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C채널이 금관의 예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현총회장과 사무총장도 C 채널처럼 아침이슬보다 금관의 예수를 추구했다. 

 

"제가 여러번 전화드렸으나 안 받고 문자도 썼고 답변이 없어 부득이 공개적으로 거론드립니다"

 

 "총회장과 임원들과 사무총장과 총무들과 직원들이 큰 벼슬인가요? 아니면 총회를 겸손히 섬기는 분입니까? 그렇다면 많은 이들과 소통해야 합니다. 공인으로 자신의 카톡이나 문자를 차단하고 귀를 막는다고 사건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C채널, 친명성 최경구 목사가 힘이 있었다면 바로 인터뷰 하였을 것

 

최경구 목사가 힘이 있었더라면 C 채널의 전화를 바로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최경구 목사는 해가 뜨면 바로 사라지는 아침이슬이었다. C 채널은 앞으로도 최경구 목사에게 전화하지 않고 금관을 쓴 목사들에게만 방송해달라고 전화하여 금관의 예수를 추구할 것이다.    

 

이는 약자를 귀하게 생각하는 김삼환목사의 철학과 배치되는 것이다. 

 

총회장의 인사말을 보자. 누가 보아도 아침이슬과 같은 글이다.  

 

말은 아침이슬, 행동은 금관의 예수

 

총회장의 인사말은 아침이슬처럼 총회를 섬긴다고 말한다. 그리고 110회의 표어는 "용서, 사랑의 시작"이라고 말을 한다. 

 

 

 

사무총장도 마찬가지이다. 글을 보면 모두 아침이슬과 같은 신앙적인 글이다.

그러나 예장통합교단의 사무총장들은 대부분 대형교회나 대형방송, 기독교서회 등 양지에서 벗 어나지 못한다. 금관의 예수를 찾는 것이다.

 

이들이 조만간 해가 뜨면 사라지는 아침이슬을 찾을 이유가 없다. 명예와 물질이 함께 하는 금관의 예수만 찾아간다. 사무총장직을 마치고 연합교단 사무총장도 서로 하려는 이유도 아침이슬이 아니라 금관의 예수 찾기이다.   

 

최상도의 글은 금관의 예수보다 '용서', '사랑'을 말하는 아침 이슬과 같다.   

 

  


그러나 최상도의 삶은 금관의 예수이다. 최경구 목사가 전화하면 받지 않아도 대형단체나 대형교회인 명성교회에서 설교하라고 전화하면 속히 받을 것이다. 그에게 아침이슬은 사라지는 이슬에 불과하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금관의 에수가 중요하다.  

 

금관의 예수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

 

총회임원단과 사무총장이 다시 유럽길에 올랐다. 업무차 갔지만 누가 보아도 금관의 예수를 찾는 행위로 보여진다. 대표자 한 명만 가면된다. 사무총장은 따라갈 이유가 없다.  

 

  

 

사무총장의 직무를 보자. 총회본부의 제반사무와 국내외 연합사업등 제반업무를 관장하는 것이다.    

 

제29조 (사무총장의 직무)

 

사무총장의 직무는 다음과 같다. 

 

1. 사무총장은 총회의 헌법, 규칙, 제 규정 및 총회 결의의 범위 안에서 총회장의 지시와 총회 임원회의 결의에 따라 1) 총회 본부의 제반 사무와 2) 국내외 교회연합사업 등 제반 업무를 관장하며 3) 소속직원을 지휘 감독한다.

2. 총회 임원회, 각 부, 위원회의 언권회원이 된다.

3. 총무 회의를 두되, 사무총장이 의장이 되며, 총무회의는 각 부 사업을 사전 또는 사후에 협의, 조정할 수 있다.  

 

사무총장이 유럽선교노회에 참석해서 할 일이 무엇인가? 총회본부의 제반 사무와 연합사업등 제반 업무, 소속 직원 지휘 감독을 유럽에서 할 수 있는가?     

 

금관의 예수가 아니라 아침이슬을 추구해야 

 

이처럼 사무총장은 끊임없이 아침이슬보다 금관의 예수를 찾고 있다.        

 

사무총장도 언급했듯이  200명 이하의 교회가 83%이고, 30명 이하의 교회가 50%가 넘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자립교회나 목회자들보다 유럽선교노회를 찾는 것은 아침이슬이 아니라 금관의 예수를 찾는 것이다. 총대들이 현사무총장의 행동을 한번쯤 새겨볼만하다.       

 

권위영 부총회장, 뒷 것 총회장이 되어야 

 

앞으로도 권위영 부총회장과 임원단들 역시 미국, 호주, 유럽 등 금관의 국가, 대형단체나 대형교회 등 금관의 예수를 찾는 것보다 어둠과 추위속에 견대내고 있는 아침이슬을 찾는 뒷 것이 되어야 한다.

 

가능하면 대형교회 행사시 권면이나 설교, 축사를 거부해야 한다. 예수처럼 뒷 것이 되기 위해서이다. 그는 자신은 사라져도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앞 것으로 만들었다. 베드로, 바울은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이제 기독교 방송국과 사무총장이나 전현직 총회장은 뒷 것이 되고, 주변인들을 앞 것으로 만드는 사회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사장, 이사장, 총회장, 대표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뒷 것이 되는 시대가 와야 한다.

 

총회장했다고 해서 영원히 금관을 쓰려고 해서는 안된다. 이제 아침이슬처럼 해가 뜨면 바로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설교없이 축도만 하는 축도 기계가 되어서도 안되고  요청해도 스스로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 설교자가 축도하면 되는 것이다.   

 

총회와 교회, 방송국을 섬긴다는 것은 자신이 뒷 것이 되어야만 그리스도가 앞 것이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이제 금관의 예수를 추구할지, 그리스도의 빛이 나타나면 사라지는 아침이슬을 추구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최상도 교수의 순교자 기준에 대해 쓴 논문과 명성의 철학과 불일치하는 C 채널에 대해서 다룰 것이다. C 채널은 상식과 공정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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