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전기가 조선에 상륙하였다

태초의 전기와 오늘의 전기

편집인 | 입력 : 2026/10/12 [04:39] | 조회수: 52

필자는 "태초에 빛이 있었다"라는 제목으로 2026. 10. 11 동료가 목회하는 군부대에 가서 군인들을 상대로 강의하였다.   

 

빛의 입자성과 파동성, 전기와 자기의 역사, 대한민국의 전기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강의 하였다. 선교사들은 고종이 1887년에 들여온 전기를 통하여 의료장비, 인쇄술 등으로 복음을 전파하는데 앞장섰다. 한반도에 전기가 없었다면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은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미국에 간 보빙사 일원이 에디슨 회사와 접촉을 하여 동양에서 최초로 전기가 설치되도록 하였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전기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는 맞물려 있었다. 알다시피 선교사들의 의료장비는 전기 없이는 사용이 불가능하였다. 

 

태초에 빛이 먼저 있었다.      

 

  


학자들은 빛의 속성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빛은 입자이기도 하면서 파동이기도 했다.  

 

  

 

아인쉬타인은 빛이 입자라고 주장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영은 빛이 입자가 아니라 파동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맥스웰은 전자기파와 빛의 광선이 동일하다고 판단했다.  

 

  


최근 연구는 입자인 빛이 파동형으로 나아간다고 보고 있다. 

 

  



  

 

전기

 

전기의 역사는 하늘에서 시작이 된다.  

 

  

 

  

 

  

 

  

 

철학의 시조 탈레스는 정전기를 주장했다. 

 

  

 

  



갈바니

 

갈바니는 개구리의 뒷다리에 전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기가 들어오는 것은 개구리 다리안에 있는 물 때문이었다. 

 

 



 


볼타

 

볼타가 최초로 건전지를 통하여 전기불을 보여주었다.  

 

  



  

 

자기

 

길버트는 지구에 자기장이 형성되는 것을 발견했다.

 

 

  

 

  

 

  

 

나침반의 바늘이 북을 향하고 있었다. 

 

  

 

외르스테드

 

  



맥스웰

 

  

 

 

  

 

 

 

에디슨과 경복궁

 

1887년 경복궁 후원의 ‘건천궁’​(乾淸宮)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전깃불이 켜졌다. 이는 토머스 에디슨이 탄소 필라멘트 전구를 발명한 지 8년 만의 일로, 중국의 자금성과 일본의 궁성보다 약 2년이나 앞선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선교사들이 1885년 상륙한 이후 2년 후 경복궁에 설치되었다. 

 

 

  

 

 

  



  

 

조선왕실이 전기등소 건립을 계획한 것은 1883년의 일이다. 미국에 파견됐던 정부사절단인 보빙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1884년 에디슨 전기회사와 전등설비 계약을 맺고 1886년 11월 전등기사 매케이를 초빙해 이듬해 1월 화력발전식 전기등소를 경복궁 안에 완공했다.

 

 

 

1883년 미국에 파견되었던 보빙사절단(민영익, 유길준 등)이 직접 미국 에디슨 전기회사를 방문해 전등 설비를 상담했고, 귀국 후 고종에게 보고하여 조선 정부(고종)가 공식적으로 에디슨사에 전등설치를 요청하였다.  

 

물불, 건달불

 

당시 발전설비는 16촉광(1촉광은 양초 1개의 밝기)의 백열등 750개를 점등할 수 있는 규모였고 첫 점등 시점은 선교사들이 들어온 2년 후, 1887년 1~3월께로 추정되는데, 건청궁 안 장안당과 곤녕합의 대청과 앞뜰, 향원지 주변을 아크등, 백열등으로 밝혔다고 한다.

 

1879년 에디슨이 탄소 필라멘트를 개발해 백열전구를 상용화한 지 불과 8년 만의 일로, 동양 최초로 설치된 에디슨 전등회사의 발전 시스템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 전등 설비 도입 사례였다.

 

경복궁, 건청궁에 켜진 전깃불은 16촉광 백열등 750개를 켤 수 있는 규모의 설비였다.

에디슨 다이너모(Edison Dynamo) 발전기 7kW 3대와 왕복운동 증기기관, 보일러 등으로 이루어진 초기 발전소 형태를 띤 것으로, ‘전기등기관소電機燈機關所’, 그냥 줄여서 ‘전기소’ 또는 ‘전등소’라고 불렀다.

 

석탄을 연료로 하였으며, 발전방식은 보일러에서 발생시킨 증기로 증기엔진을 회전시킨 다음, 엔진의 플라이휠에 벨트를 걸어 다이너모의 전기자를 회전시켜 전기를 생산한 기전機電 시스템이었다. 즉, 화력발전소의 형태를 갖춘 것이다.

 

발전설비가 수랭식(水冷式, Water cooling)이었기 때문에 가열된 증기를 식히기 위해 물이 필요했으며, 건청궁 앞 향원지(香遠池)의 연못물을 끌어다가 냉각수로 사용하였다.

 

당시 향원지 물을 끌어올려 전기를 생산한 까닭에 ‘물불’이라고 불렀고, 불안정한 발전 시스템 탓에 제멋대로 켜졌다 꺼졌다 한다고 해서 ‘건달불’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에디슨이 창립한 회사가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들어온지 2년 후 1887년에 경북궁에 전기를 설치한다. 대한민국에서 보이지 않는 성령의 역사와 전기의 역사가 맞물려있다.   

 

1887년 3월 6일, 경복궁 건청궁에 미국 에디슨 전기회사의 설비를 들여와 백열전구(16촉광 약 750개 규모)에 불을 밝혔다.

 

당시 흑인 전기기사 맥케이(McKay) 등이 설치를 맡았으며, 백성들은 전기를 '건달불'이나 '증어(기름 없이 켜지는 불)'라고 부르며 신기해했다. 

1898년 고종의 지시로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 회사인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되었다. 대한민국은 복음의 역사와 선교의 역사가 맥을 같이 한다. 

 

1899년 5월 서울 종로 일대(청량리~서대문 구간)에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전기 전차가 개통되었다.  1944년에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던 수풍 수력발전소가 완공되었다.

 

  



  

 

  



  



  

 

  

 

  

 
1900년 4월 10일, 한성전기회사는 종로 거리에 세 개의 가로등(민간 전등)을 처음으로 점등했다. 이 날을 기념하여 오늘날 매년 4월 10일이 ‘전기의 날’로 제정되었다.

 

1884년 알렌(Horace N. Allen) 같은 의료선교사나, 1885년에 입국한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등 개신교 선교사들은 전기 자체를 보급한 기술자는 아니었지만 이들은 서양의 근대 의술, 교육(배재학당, 이화학당 등), 인쇄술 등 서구의 앞선 과학 기술과 문물을 조선 사회에 함께 전파하며 근대화의 촉매 역할을 했다. 

 

하나님은 복음을 위하여 전기까지 준비하였던 것이다. 대한민국에게는 암흑의 경복궁에 불을 밝힌 것조 중요하였지만 희망이 없는 암흑의 나라에 복음의 불을 밝힌 것이 더욱 중요하였다.

성령의 전기가 조선인들 가슴속에 영적인 전기로서 파고 들어 한국은 복음이 들어온지 140년만에 반도체 강국이 되어 일본을 앞서게 되었다.  이미 성령의 전기는 142년 전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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