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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이전 언어는 하나
바벨탑 이전, 태초에는 언어가 하나였다. 창세기 11장 1절은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의 언어를 갖고서 입을 맞춰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인간이 하나의 언어였을 때 외친 것은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11: 3-4) 였다.
언어의 저주와 회복
이에 하나님은 언어의 저주를 허락하셨다. 그 이후 전세계는 하나의 언어에서 약 6,000 여개 이상의 언어가 발생하게 된다. 다양한 언어의 창조는 바벨탑 이후에 나타났다.
그러나 땅끝까지 이르러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는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하나님은 언어의 저주를 푸셨다. 하나의 언어로 많은 사람들에 듣게 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행2:8-12)
실크로드에 간 한인들: 고구려 사신, 혜초, 고선지
불행하게도 당시에 한반도에서 실크로드를 통해서 예루살렘까지 온 사람들은 없었다.
한인으로서는 7-8세기나 되어서야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까지 원정한 것이다.
실크로드는 7세기 후반에 당과 대립하던 고구려 연개소문은 당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아프라시압 궁전까지 돌궐족(튀르키에)의 도움을 받기 위해 사신을 보냈다. 조우관을 쓴 사람은 고구려의 사신이다.
혜초
가스펠로드와 저주로부터 회복
이처럼 한민족들은 일찍부터 실크로드를 향했다. 불행하게도 한민족들은 1세기에는 예루살렘까지 갈 수 없었다. 그러나 한민족들은 1세기에 예루살렘에 가지 않더라도 실크로드를 타고 들어온 경교 선교사들이나 카톨릭 사제를 통하여 간접적으로나마 복음을 접하였다.
복음을 접할 때 언어의 저주는 풀리는 것이다. 일제시대처럼 창씨개명을 하여 일본어를 배울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일본말을 강요하는 것은 언어의 저주였다. 창세기의 역사는 언어의 저주의 역사였다.
그러나 창세기의 언어의 저주는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일시적으로 풀렸다. 땅끝까지 이르러 인간의 이름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할 때 언어의 저주는 풀리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하여, 즉 자신의 이름을 내고 하늘까지 증거하기 위해 남을 비난하고 헐뜯는 사람의 혀는 여전히 언어의 저주속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언어가 아닌 사탄의 언어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언어를 저주하자 6,000여개의 언어가 창조되면서 인간의 언어는 다양한 어족으로 나뉜 것을 알 수 있다.
아프리카만 해도 2,000 여개 이상의 언어가 있고, 인도만 해도 약 200 여개의 언어가 있다. 대부분 문자도 없고 가난과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의 언어
언어가 하나가 되어야만 경제발전과 학문발전이 있다. 미합중국은 언어가 하나이지만 중국은 다양한 언어가 있다.
드라비다 족은 엄마, 아빠, 나에 대해 공통된 언어를 사용한다. 약 1,300여개의 단어가 유사하다.
유사한 단어를 보자.
언어의 역사
유럽과 인도는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서남아시아의 페니키아의 알파벳의 영향을 받아 알파벳 언어가 주축을 이룬다. 인도 유럽 어족도 상형 문자로 시작이 되었다.
페니키아어는 이집트 상형문자의 영향을 받아 알파벳 형식으로 새롭게 발전해서 인도유럽어족의 근원이 된다.
한자문화권
중국과 한국, 일본은 특히 한자문화권이다.
일본은 여전히 2,100이상 한자를 사용하고 있고, 중국역시 간자체로 변화하였지만 정자체인 한문을 약 300여개 이상 사용하고, 대만은 지금까지 정자체 한자를 사용한다. 대한민국도 한글의 완전한 의미를 위해서 여전히 한자를 사용하고 있다.
언어의 저주 회복
그러나 서로 일치하고 뜻을 알아듣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고 인간의 이름을 증거하다가는 하나님은 언어의 저주이외 기후의 저주까지 가져올 것이다. 전세계의 기후상황이 저주직전까지 가고 있다.
창세기의 저주는 노동의 저주, 잉태의 저주, 기후의 저주, 언어의 저주이다. 모두 사람의 이름을 증거할 때 오는 저주들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최초의 문자 계시는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두지마라", "우숭숭배하지 말라"는 것이다.
알렙의 의미
히브리어의 첫 글자인 알렙은 황소에서 파생된 문자이다.
황소는 알프이다.
소의 모습을 보면서 글자를 만들었다. 알파벳이나 히브리어의 첫번때 상형글자가 황소라는 뜻을 가진 'A'이다. 알렙이다.
영어에서는 알프는 반회전해서 '에이'로 시작한다.
헬라어에서는 알파로 시작한다.
'A'는 알프의 '황소
우리는 언어를 통한 하나님의 의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언어로 시작되었다. 태초에 언어가 있었다. 세상을 창조한 것도 언어이고, 아담과 하와에게 명령을 한 것도 언어이고, 노와와 아브라함, 모세를 부른 것도 언어의 계시를 통한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알게 한 것도 내적 계시를 통한 것이다.
언어를 통한 내적 계시
수많은 목회자를 부른 것도 언어를 통한 내적 계시이다. 설교를 통해서 목사의 언어를 듣는 것은 노아와 아브라함, 이삭, 야고보에게 주셨던 이 시대와 나를 위한 하나님의 언어계시를 듣고자 함이다. 기도를 하는 것도 내적으로 하나님의 언어계시를 체험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우리의 기도언어를 통하여 내 뜻을 하나님께 전달하는 것이다. 기도는 나의 언어와 하나님의 언어가 만나는 것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내적 언어계시가 없이는 신앙생할은 하나마나한 것이다.
바벨은 혼돈의 뜻을 담고 있다. 언어가 혼돈된 세계가 바벨탑의 세계이다. 아무리 AI가 발달해도 나와 하나님과의 언어가 소통되지 않는다면 혼돈의 언어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벨탑의 저주가 아닐까?
우리가 매일 기도하면서 회개하는 것은 원죄의 저주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고, 성경을 읽는 것은 하나님의 객관적인 언어의 계시를 체험하고자 하는 것이고, 기도를 하는 것은 내 안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언어를 듣고자 함이다. 직통계시라면 더 좋을 것이다. 직통계시란 내밀한 하나님의 은혜를 사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태초에 언어가 있었다.
태초에 언어가 있었다. 그 언어가 문자가 될 때는 겨우 4,000년 전이었다. 언어의 저주가 일시적으로 풀린 것은 2,000년 전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였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혀는 여전히 언어의 저주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성부 하나님의 언어, 성자 예수님의 언어, 성령의 내적인 언어를 체험해야 할 것이다.
언어는 하나
우리는 성경을 통한 태초 하나님의 언어계시, 2,000년 전 예수의 언어계시, 기도와 설교를 통한 성령의 언어계시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세상을 창조한 태초의 언어도 하나였지만 성령시대에 우리를 향한 영적인 언어도 하나이다.
태초에 언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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