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메르 민족이전에 한민족이 있었다

문자를 통해 본 수메르와 고조선

편집인 | 입력 : 2025/02/01 [03:28] | 조회수: 837

주디스코핀과 로버트 스테이시가 쓴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에 의하면 서양문명의 기원을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수메르라고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수메르문명이 기원전 5000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상당히 발전된 문명을 갖고 있었다. 

 

  

  

수메르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위치해 있다. 

 

  


수메르는 기원전 2500년전부터 쐐기문자를 사용하였다. 

 

쐐기는 나무나 쇠를 비스듬하게 깎아 만든 물건. 주로 문을 괴어 놓거나 틈새를 효과적으로 가르는 데 쓰인다.

 

  


쐐기의 모양을 한자로는 설형(楔形)이라고 한다.  이러한 형태를 본뜬 것이 쐐기 문자(楔形文字)이다. 이 문자는 수메르 문명의 문자로, 현재까지 발견된 문자 중 가장 오래되었다. 문자의 모양이 쐐기와 같다는 의미에서 쐐기문자나 설형문자라고 불린다.

 

처음에는 상형문자를 사용하다가 점진적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문자에 힘입어 길가메시 서사시도 나오게 되었다.  

 

  

 

수메르의 문명을 이어받은 아카드시대에는 함무라비 법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함무라비법전은 모두 쐐기문자로 되어있다. 

  

  

 

고조선 시대의 문자

 

가림토

 

이 당시 우리나라는 고조선 시대였다. 고조선시대에도 문자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한단고기  단군세기편에는 "삼랑을보록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게 하니 이것이 가림토 문자이다"라고 하여 가림토 문자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가림토 문자는 훈민정음을 기초하는데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25년 12월조 기사’에 “언문 28자는 고전을 본떴다(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라 하였고, 1444년 2월에 ‘최만리 등 집현전 학사들이 올린 상소문’에서도 “글자의 형태는 비록 옛 전문을 본떴지만(字形雖倣古之篆文)”이라 하여 ‘글자는 옛 전자를 본떴다(字倣古篆)’는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은 흔히 ‘상형(象形)’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나, ‘훈민정음’이 옛 전서체의 한자를 본떠 만든 것이라는 ‘훈민정음’의 기원설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고조선의 가림토는 조선의 훈민정음의 산파역할을 하였다. 

 

낭하리 암각

 

남해면 낭하리 암각에도 "남해현 낭하리에 계곡 바위 위에 신시의 고각(古刻)이 있다. 그 글에 환웅천황께서 사냥 나왔다가 제를 삼신께 드린다고 했다"고 뜻하는 문자가 새겨져 있다. 

 

  남해면 낭하리 암각

 

『환단고기』에 인용된『대변설』의 주에 의하면 "남해현 낭하리에 계곡 바위 위에 신시의 고각(古刻)이 있다. 그 글에 환웅천황께서 사냥 나왔다가 제를 삼신께 드린다고 했다"고 했다. 

 

신지문자와 창힐문자 

 

  

 

  

 

  

 

고조선시대에 나타난 글자는 낭하리 암각, 신지문자(녹도문), 창힐문, 갑골문이 있다. 

 

   낭하리 암각                           갑골문

 

  

 

북한에서는 중등부 교과서에 '고조선 사람들이 남긴 유산물'이라는 제목에 "신지글자는 고조선이 세워진 첫 시기에 만들어진 우리 민족의 첫 글자입니다"고 가르치고있다.  

 

  

 

이외에 고조선에는 명도전이라는 화폐에 '명'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하가점 하층문화

 

이외에도 고조선 시대 동이족이 중심이 된 홍산문화 하가점 하층문화(B.C 2400-1500)에서  문자가 있는 청동시루가 발견되었다. 

 

  

 

  

 

  

 

  

 

  

 

갑골문자

 

갑골 문자(甲骨文字)는 기원전 1200년 즈음에 처음 등장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체계적인' 문자이자, 한자의 직계조상인 문자이다. 거북의 배껍질(甲)이나 동물의 뼈(骨)에 새겨졌기에 갑골문(甲骨文)이라고 부른다.  주로 점을 치는데 사용되었다. 

 

갑골문자는 상나라에서 발견되었고 이 지역은 동이족이 활동하는 지역이었다. 갑골문자도 동이족이 만든 문자였다.  

 

  

 

  

 

  

 

  

 

지금까지 갑록문자는 주로 은(상)나라 때 (기원전 14세기-11세기)의 수도였던 중국 하남성 은허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었지만 초기의 갑골문화는 발해연안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산동반도, 서쪽으로는 태행산 이동과 황하 이북, 북으로는 대흥안령 이남의 요녕 지방과 요동반도, 흑룡강 이남의 송화강, 두만강 유역에 분포되어 있다. 갑골문자는 주로 동이족이 살았던 지역에서 출토가 되었다.  대한민국에도 경산, 김해, 군산, 창원, 늑도, 해남에서도 나타난다. 

이처럼 동이족은 오래전부터 문자를 개발하였다. 

 

  


한자뿐만아니라 한글도 처음에는 상형문자에서 시작된 단어도 있다. 논에 심는 벼도 상형문자에서 온 것이다.  

 

  

 

수메르 문자나 고조선시대의 문자는 모두 상형문자에서 출발하였다. 이집트도 상형문자에서 출발하였다. 인간의 문자는 모두 상형문자에서 출발하였다. 그림이 문자로 변하였던 것이다. 그러는 의미에서 고조선이나 동이족들이 수메르까지 흘러가서 수메르나라를 탄생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아브라함은 수메르 우르에서 출생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인류 최초의 문명이 발생한 수메르의 갈대아 우르지역 출신이다.

 

BC 9세기 이후의 앗수르 왕가의 비문 중에 `갈두'(Kaldu)와 그 주민 `갈대'(Kaldai)에 대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아람족의 일파인 갈대가 후에 `갈대아 사람'(Chaldeans)이며, 그들은 BC 1000년대에 이미 메소보다미아로 진출하고 있었다.

 

갈대아는 티그리스, 유브라데 두 강의 하류 유역 바벨론과 페르시아만의 사이에 끼어있는 지역에 위치한다. 갈대아의 대표적인 성읍은 우르(창 11:28,31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고향이다)인데,이 지방의 대부분은 습지이며, 특별히 눈에 띄는 성읍은 거의 없다. 갈대아의 주민은 어업,수렵, 소규모의 농업과 가축 사육업을 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갔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아브라함이 수메르의 갈대아 우르를 떠남으로 시작이 되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창11:31-32)

 

  


아브라함은 우리나라 고조선시대에 해당하는 B.C2166년에 출생한 것으로 본다. 

 

  


동이족이나 단군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수메르는 수밀국의 나라를 의미하며 아브라함 역시 한민족의 후손일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한다. 노아홍수 시대 이후 인류는 하나의 조상에서 나왔기 때문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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