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쓰는 용어 중에 '겨레'라는 말이 있다. 한겨레 신문도 '겨레'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겨레는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민족을 말한다.
김민기가 작사하고, 송창식이 작곡한 노래 중에 '내나라 내겨례'라는 노래가 있다.
그만큼 겨레는 우리 민족에게 와닿는 같은 혈족을 가진 민족의 개념으로서 애국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러한 겨례의 어원을 찾다가 보면 유대인과 한국의 연관성이 있다.
겨레의 어원은 케레이에서 온다. 케레이는 케레이족에서 온 말로 원래는 발해유민이었는데 거란족에 멸망을 당해 이들은 카자흐스탄까지 이동을 한다. 발해는 고구려 유민들로 이루어진 우리 민족이다. 카자흐스탄에는 여전히 케레이 족이 살고 있다.
몽골에서 고대사 박사학위를 한 김정민 박사는 발해의 유민들이 케레이 족(케레이트)이 되었다고 한다. 즉 발해 유민들이 가자흐스탄으로 건너가서 케레이족이 되었다
당시 만주에 살았던 케레이족들은 발해가 거란족에 멸망당함으로서 결국 만주를 포기하고 징기스탄과 함께 중앙아시아를 공격해서 카자흐스탄에 살게 되었다. 현재는 약 100만명이 된다.
발해시대부터 기독교에 귀의한 케레이 족
케레이족은 1206년 몽골의 칸 테무진이 칭기즈 칸으로 즉위하고, 몽골 제국(예케 몽골 울루스)이 성립한 뒤에도 케레이트는 칭기즈 황금 씨족의 인척으로써 몽골 유목 부족 연합의 유력 부족 중 하나로 존속했다. 그들은 몽골의 남부에 거주했다
이들은 발해에서 전파된 경교를 믿었고, 몽골에서도 기독교가 전파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가 되게 한 것에 일익을 담당했다.
몽골 황실의 기독교도에 대한 호의적인 자세는 케레이트 왕족과 귀족들을 통해 몽골 제국의 황족, 귀족에 기독교가 전파되어 수많은 기독교인이 생기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 케레이트 출신으로 몽골 제국에서 군인 및 관리로 활약한 사람도 역사에 적잖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우구데이 칸(원 태종) 때 서기 관리(비치크치)의 장관으로 활약한 진카이는 출신에 대해 여러 설이 있지만, 케레이트 출신이라고 하는 설이 존재한다.
카자흐스탄의 케레이 족보에서 나오는 중앙아시아의 이동경로는 계연수가 쓴 환단고기의 기록과 일치한다.
카자흐스탄에 가면 케레이족의 족보가 있다.
겨례는 케레이에서 파생
김정민박사는 케레이에서 파생된 것이 겨레라고 보고 있다. 고려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파생된 것이다.
한국식 발음은 ‘겨레’이며 케레이를 한자로 표기한 또 다른 음차문자가 ‘고려’다. 따라서 비교음운학으로 케레이와 고려는 같은 민족임이 드러난다.
케레이(겨레)들은 대 홍수 이후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좌우로 흐트지면서 유라시아의 주요 성스러운 산에 신전을 건설하고 종교적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부족을 건설하면서 살았다.
이들은 대홍수 이후 파미르 고원을 넘어서 동서로 갈라졌고 그 일부가 동북아사이까지 오게된 것이다.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북유럽 여러나라도 그들의 조상이 모두 피미르를 넘어서 왔다고 본다. '알이랑 민족'을 쓴 유석근 목사도 노아의 자손 욕단이 파미르 고원을 넘어서 한반도까지 상륙하였다고 보고 있다.
케리이족 역시 만주까지 가서 고구려인이 되었고 고구려가 멸망당하자 발해를 세웠고 발해가 망하자, 징기스칸과 함께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까지 이동한 것이다. 카자흐스탄에서는 1937년 스탈린으로부터 강제 이주된 20여만명 약 06%의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소수부족으로 있다.
중국인들은 케레이들을 커리예라고 부르고 러시아인들은 까리예츠라고 부른다. 여기서 나온 말이 고려인들을 뜻하는 까레이스키였다.
카라이트 유대인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케리이트에서 파생된 족보로서 카라이트를 볼 수 있다. 케레이족은 일부는 한국으로 갔다가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가기도 했지만 그들 후손중에 카라이트가 있다. 이 카리이트 유대인에서 가야가 파생된 것이다.
가야에서 발견된 토기에 히브리 문자가 쓰여져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문자에 대해 염동옥씨는 서아시아의 문물이 들어왔거나 유대인들이 한반도에 왔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토기에 새겨져있는 기호에 대해 페니키아와 고대 히브리어의 글자라고 해석한다.
이 토기가 발견된 지역은 금관가야(김수로왕)가 지배했던 지역이다. 특히 인도의 왕비와 결혼한 금관가야의 김수로왕시대는 서역과 많은 교류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허황후는 인도의 유대라 는 뜻이 있는 아유타 왕국에서 온 사람이다.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로 성은 허이고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열여섯살입니다. 본국에 있을 때 금년 5월에 부왕과 황후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어젯밤 꿈에 함께 황천(皇天)을 뵈었는데, 황천은 가락국의 왕 수로(首露)라는 자는 하늘이 내려 보내서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니 곧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것이 이 사람이다. 또 나라를 새로 다스림에 있어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경들은 공주를 보내서 그 배필을 삼게 하라 하고, 말을 마치자 하늘로 올라갔다. 꿈을 깬 뒤에도 황천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너는 이 자리에서 곧 부모를 작별하고 그곳을 향해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배를 타고 멀리 증조(蒸棗)를 찾고, 하늘로 가서 반도(蟠桃)를 찾아 이제 아름다운 모습으로 용안(龍顔)을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서남아시아의 토기가 한반도에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고, 페니키아와 히브리 문자를 아는 사람들이 한반도까지 직접 들어와 토기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카라이트 유대인
카라이트는 유대인이다. 카라이트(Qarays, 영어: Karaites)는 카라이트 유대교를 믿는 투르크계에서 분파된 민족이다. 크림반도를 비롯 우크라이나, 폴란드, 리투아니아, 러시아 본토 등지에 분포한다.
카라이트 유대인은 매우 적다. 이들은 통혼을 거부하고 카라이트끼리 족혼을 하는 경향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내부에서 한때 카라이트 유태인이라고 여권에 분류되었다.
이들은 주로 러시아에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예수의 십자가형과 관련 없이 그 전에 이주했다는 역사적인 문서를 나치에 제시하여 탄압을 면하기도 했다.
카라이트 유대주의는 유대 종교법인 율법 (할라카)과 신학의 권위에 있어서 구약성서 Tanakh 만을 최고로 인정하고 미드라쉬나 Midrash 탈무드Tamud 의 구전 전통의 집합을 인정하지 않는다.
카라이트 유대주의는 모든 신성한 율법들이 성문토라 written Torah 만이 하나님이 모세에게 기록하게 한 것이며 부가적인 구전 율법과 설명들은 인정치 않는 것이다.
유라시아에 흩어져 있는 케레이족들은 중국, 몽골, 발해, 이스라엘, 한국, 일본에까지 들어간 것이다. 케레이족들은 고구려, 백제를 거쳐서 일본에 들어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민족은 유대인과 연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대홍수 이후 실크로드를 거쳐서 고구려와 발해까지 이동한 케레이족은 현재는 카자흐스탄에 대규모로 살고 있지만 그들은 유대인들과도 관련이 있고, 한국, 중국, 일본까지 영향을 미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피부에 와닿은 겨레와 고려는 유라시아에 흩어져 있는 케레이족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자손인 케레이족의 후손 코리아 사람들은 일찍부터 기독교를 접한 민족으로서 세계의 150개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있고 가는 곳마다 우선 교회를 세우고 있다. 이 민족이야 말로 천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