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목사는 광주에 내려가서 518 폄하발언을 하였다고 고발을 당했다.
전목사는 CIA문건이 있다며 1) 518은 공산당단체와 김대중 지지자들이 일으킨 합작품이다. 2)폭동은 전문적 선동군에 의해 발생하였지 광주 시민들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3) 폭도들이 전남의대 옥상에서 국군 헬리콥터를 향해 발포하였다. 4) 북한 고정간첩이 광주시민 행해 총을 쏘았다. 총맞은 시신들을 조사했더니 시민군들이 등어리에 총을 맞은 사례들이 많이 있었다고 했다.
사실관계
그렇다면 그의 말을 하나씩 입증을 해보자. 우선 CIA문건을 보자.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를 말이다.
전광훈목사 발언의 진위여부
먼저 전목사가 518은 공산당간첩과 김대중 지지자들이 합작한 것으로 CIA문건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 말에 진위여부를 살펴보자.
MARTIAL LAW COMMAND (MLC) ISSUED ON MAY 31 A "COMPREHENSIVE REPORT" ON THE KWANGJU INSURRECTIDN (REF). SEOUL DAILIES MAY 31 CARRIED SUMMARIES PLUS THE FULL 5,000 -WORD TEXT. HEADLINES FEATURED OFFICIAL DEATH-TOLL FIGURES: 144 CIVILIANS, 22 SOLDIERS, AND 4 POLICEMEN KILLED.
계엄사령부는 5월 31일 광주 사태에 대한 "종합 보고서"를 발표했다. 서울의 일간지는 일제히 5천 단어로 된 전문과 요약을 보도했다. 특집기사로 보도된 공식 사망자 현황은 민간인 144명, 군인 22명, 그리고 경찰 4명이다.
THF RIOT WAS THE WORK OF COMMUNIST AGENTS AND THE FOLLOWERS OF KIM DAE-JUNG (M-R: KIM TAE CHUNG), ACCORDING TO THE MLC ACCOUNT. TWO REINSTATED STUDENTS (I.E. FORMER POLITICAL OFFENDERS PERMITTED TO RETURN TO COLLEGE THE BEGINNING OF THE PRESENT SEMESTER), ONE EACH FROM CHOSUN AND CHONNAM UNIVERSITIES AND BOTH PAID KDJ LOYALISTS, ARE NAMED AS THE PRINCIPAL AGITATORS BEHIND THE ORIGINAL STUDENT PROTESTS.
계엄사령부 보고에 따르면 폭동은 공산주의자인 간첩과 김대중의 추종자들이 일으킨 것이었다. 이번 학생소요를 배후에서 조종한 주동자로 지목된 사람은 반체제 선동가로서 징계를 받았다가 이번 학기에 복학이 허용된 조선대와 전남대의 복학생 2명 으로서 모두 김대중의 열성 지지자였다
그러므로 전광훈목사는 CIA 문건에 입각하여 북한군이 개입하였다고 한 발언은 하자가 없다. 적어도 사실에 근거하였기 때문이다.
CIA 극비문서, DIA
미국 국방정보국(Defense Intelligence Agency)은 1980년 5월 19일 평양 주석궁에서 김일성과 오진우 무력부장이 나눈 남침 계획 밀담에 관한 내용을 공개했다. 북한 수뇌부는 "광주폭동이 전국적인 민중반란으로 확산되면 즉각 남침하기로" 결정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CIA가 공개한 DIA 문건은 518재단이 공개한 문건과 다른 내용을 갖고 있다.
THIS IS AN INFO REPORT, NOT FINALLY EVALUATED INTEL
1. {U} (TRY: NORTH KOREA (KN)/REPUBLIC OF KOREA (KS) 2. (UF TITLE: KN INTENTIONS/PERCEPTION IN CONNECTION WITH KUANGJU INCIDENT 3. {U} DATE OF INFO: 800518-800527
7. SUMMARY: ON 19 MAY 80, AMIDST THE STUDENT DEMONSTRATIONS AND SUBSEQUENT RIOT IN KWANGJU, KS; A SECRET MEETING WAS HELD AT THE KN PRESIDENTIAL MANSION BETWEEN KN PRESIDENT {KIM)} IL-SONG L855/2480/2052) KN MINISTER OF PEOPLE'S ARMED FORCES ((50)) CHIN-U (0702/2182/1342) AND OTHER KN LEADERS (NOT FURTHER
Summay: On 19 May 80, Amidst the student demonstrations and subsequent riot in Kangju, KS, a secret meeting was held at the KN Presedential Mansion between KN President ((Kim)) Il-Song (6855/2480/2052) and KN Minister of People's Armed Forces ((30)) Chin-U (0702/2182/1342) and other KN leaders (nor further
요약: 1980년 5월 19일에 남한 광주에서 학생데모가 일어나 폭동으로 확산되는 사이에 북한 주석궁에서는 김일성 주석과 오진우 무력부장 및 기타 북한 수뇌부가 회동하여 비밀 회담을 하였다
UNIDENTIFIED). EXACTLY WHAT WAS DISCUSSED AT THE SECRET MEETING IS NOT KNOWN: HOWEVER, THE MEETING WAS PRESUMED TO HAVE COVERED THE COURSE OF FUTURE EN ACTIONS IN CONNECTION WITH THE RIOT IN KS.
THE KN LEADERS ALLEGEDLY DECIDED "NOT TO REFRAIN FROM INVADING KS. THE KWANGJU RIOT DEVELOPED INTO A NATIONWIDE POPULAR REVOLT."
unidentified). Exactly what was discussed at the secret meeting is not known. However, the meeting was presumed to have covered the course of future KN actions in connection with the riot in KS. The KN leaders allegedly decided “not to refrain from invading KS, if the Kwangju riot developed into a nationwide popular revolt.”
미상). 그 비밀회담에서 정확히 무엇을 논의하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회담에서 남한에서의 폭동과 관련하여 북한이 취할 행동이 다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해진 바에 의하면 북한 수뇌부는 "광주폭동이 전국적인 민중반란으로 확산되면 즉각 남침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므로 전목사가 1) 518은 공산당단체와 김대중 지지자들이 일으킨 합작품이다. 2)폭동은 전문적 선동군에 의해 발생하였지 광주 시민들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CIA문건에서 근거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의 내용도 CIA가 공개한 기밀문건이다. 여기서 남한의 관계자말을 인용하여 북한이 간첩들을 남쪽으로 침투시키려는 노력이 포착되었다고 했다. Continuing unrest in Korea is feared
Meanwhile, officials said there were still no signs that North Korea was preparing any action against South Korea, though North Korean forces were reported on maximum alert. One official said there were some signs of increased efforts by North Korea to infiltrate agents into the South, perhaps to capitalize on the disorders.
한편 관리들은 북한군은 최대 경계태세로 보고되었지만 북한이 남한에 대한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 관계자는 북한이 아마도 무질서를 이용하기 위해 간첩들을 남쪽으로 침투시키려는 노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징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뉴스 1980.5.29 에도 광주 518사건을 북한과 연계하여 해석하면서 간첩 이창용이 광주 518을 선동하기 위하여 파송했다고 주장했다.
기밀 해제된 ‘외교 전문(80SEOUL 006865)’에 의하면 1980년 당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는 워싱톤에 보내는 서신에서 “(이씨 생포 등) 이 모든 일의 배후에 ‘불순세력’과 공산주의 선동가들이 있다(‘impure elements’ and communist instigators lay behind the whole affair)”고 했다.
4. AN INTERVIEW GRANTED BY THE CHAIRMAN OF THAT COMMITTEE ARCHBISHOP YUN, SUGGESTS THAT RECONCILIATION MAY BE LESS EASY. THE BISHOP IS QUOTED AS HAVING TOLD AN AFP REPORTER (REF B) THAT THE PEOPLE'S MIND WOULD NOT BE APPEASED* UNTIL THE MARTIAL LAW AUTHORITIES APOLOGIZED FOR "BRUTALITY" DISPLAYED BY THEIR TROOPS. TEXT OF TELEGRAM 80SEOUL 006865
5. COMMENT: YUN'S FACTION WAS GENERALLY CONSIDERED THAT OF THE MODERATES WITHIN THE CITY. HOWEVER, AN OFFICIAL APOLOGY WILL ALMOST CERTAINLY NOT BE FORTHCOMING. THE AUTHORITIES' APPROACH HAS BEEN TO CASTIGATE THOSE WHO DISRUPTED HARMONY AND ORDER IN KWANGJU. NORTH KOREAN INFILTRATORS, INCLUDING ONE WHO WAS CAPTURED AND WHOSE MISSION APPARENTLY WAS TO ENTER KWANGJU, HAVE RECEIVED MUCH PRESS PLAY; THE IMPLICATION HAS BEEN THAT "IMPURE ELEMENTS AND COMMUNIST INSTIGATORS LAY BEHIND THE WHOLE AFFAIR.
당국은 광주의 질서와 조화를 파괴하는 사람들을 징계하였습니다. 생포된 간첩을 포함하여 북한의 침입자들의 임무는 광주에 들어가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전체의 배후에 불순한 요소들과 공산주의 선동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을 방문한 조지워싱톤 대학교 정치학 박사 마이클리는 스카이데일리와 직접 인터뷰에서 "북한이 민중봉기 형식으로 직접 계확히고 지휘한 대남공작에 광주시민의 명예와 순수를 도둑맞은 게 5.18 사태의 본질이라"고 했다.
[단독: 5·18 진실 찾기⑱] “5·18은 北이 민중 봉기로 조작한 대남공작” (skyedaily.com)
이러한 근거를 보았을 때 북한 사람들이 와서 김대중전대통령을 따르는 사람들과 북한인들이 광주소요사태를 선동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폭도들이 전남의대 옥상에서 헬리콥터를 행해 발사했을 가능성 여부
사실상 이 말은 헬리콥터가 총을 맞은 흔적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는 않다. 단지 전광훈목사의 의견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헬기에서 총을 쏘았다는 증언이 있다.
실제로 헬기 사격으로 죽은 사람도 있다.
헬기 사격으로 죽은 사람도 있다.
국방부 5·18특조위는 7일 "5·18민주화운동 기간에 육군은 공격헬기 500MD와 기동헬기 UH-1H를 이용해 광주시민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증거가 없다며 계엄군의 5·18 헬기사격을 부인했던 국방부가 이를 인정하며 과거 이와 관련된 증언과 목격담도 주목을 받고 있다.
5월 단체 등에 따르면 1994년 발간된 '사제의 증언:진실을 말해도 안 믿는 세상'(빛고을출판사)에 따르면 고(故) 조비오 신부는 1989년 2월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5월21일 오후 1시30분에서 2시 사이 (옛)도청 쪽에서 사직공원 쪽으로 헬기가 날아가면서 번쩍하는 불빛과 함께 연속 3차례에 걸쳐 지축을 울리는 기관총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이어 "나중에 현장을 목격한 김주호씨로부터 그 기총사격으로 불로교 양쪽에서 시민들이 각각 10명 이상씩 쓰러졌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또 5·18 당시 승려로 적십자 구조활동을 했던 이광영씨도 청문회에서 "5월21일 오후 2시에서 2시30분 사이 적십자 활동차를 타고 월산동 로터리에 이르렀을 때 광주공원 쪽에서 날아온 헬기가 총을 난사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며 "그때 헬기의 기총소사로 관통상을 입은 한 여학생을 적십자병원에 실어다 줬다"고 증언했다.
선교사로 광주에 있었던 미국인 피터슨도 1994년 책 '5·18 광주사태'를 펴내며 관련 목격담을 전했다. 그는 "21일 오후 3시15분쯤 헬기가 거리의 군중을 쏘기 시작한 이후 병원에 환자들이 몰려들었다"고 적었다.
지난 1995년 전두환 전 대통령 등에 대한 검찰의 수사 과정에 작성된 군 관계자의 진술에도 헬기 사격에 대해 언급했다.
5·18 당시 군의관은 검찰에서 "피터슨 목사의 말을 듣고 상공을 보니 헬기에서 사격을 하고 있었다. '타다닥'하는 소리가 3번 들렸던 것 같다. 불빛도 보였다"고 진술했다.
정수만 전 5·18민주유공자 유족회장도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에서 쏜 총에 맞아 사람이 숨지는 일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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