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좋아한 사람들

임종석과 신영복, 윤이상의 간첩 혐의 의혹

편집인 | 입력 : 2023/05/25 [22:36] | 조회수: 438

1. 임종석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씨는 1991년 8월 24-27일까지 "전대협은 양심이요 정의요, 힘입니다" 라는 옥중서신을 북한의 민주조선에  기고하였다. 

 

임종석은 임수경의 불법 방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따른 경찰 수배에서 도망치다가 1989년 말 체포, 5년 실형 선고를 받고 복역하면서 옥중서신을 북한의 로동신문에 기고한 것이다.

 

 

 

 

  

 

  

 

  

 

그는 도피행각 10개월만에 잡혀서 구속이 된다. 

 

  

 

그는 보안법으로 구속된 상태에서도 북한과 연결을 하였다.

 

임종석의 편지

 

1991. 8. 24.- 28일까지 네 번에 걸쳐서 '전대협은 양심이요 정의요 힘입니다'라는 글을 민주조선에 기고한 바 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글을 썼다. 

 

반공교육은 민족을 이간질하여 통일의식을 말실시키고 미국이 군대를 주둔시키고 내 나라의 명예를 떡주무르듯이 주무리고 독재의 지배를 용납하였습니다. ...........

 

지난해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을 내세운 전교조 선생님들의 피나는 투쟁에 온마음으로 정성을 보낸 것은 비단 저뿐이 아닙니다.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학교교육실현은 한시도 이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하여간 이런 교육현실에서 자란 저는 분명 비정상이었습니다.     

 

  1991. 8. 24

 

 

 1991. 8. 25

 

  1991. 8. 27 로동신문

 

임종석은 노동해방실천연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리기도 했다. 

 

  

 

 

  

 

 

 

<동지사랑의 정치>

 

 

                                               -임종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혁명영도를 개시한 때로부터 어느덧 반세기가 지나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가 승승장구하며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며 전진하고 있는 것은 바로 김 위원장의 선군정치가 사랑의 정치, 동지애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온 사회를 하나의 동지애의 세계로 만들고 혁명적 동지애로 뭉친 단결의 위력으로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갈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래도 동지애의 노래를 가장 사랑한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난의 행군길에 들어선 1995년 1월 1일 다박솔 초소 현지지도를 마친 새해 첫 밤 일꾼들과 함께 동지애의 노래를 불렀고 96년 새해 첫 아침에도 비장한 마음으로 동지애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동지애의 노래와 함께, 동지들과 함께 시련의 고비를 넘으며 제국주의자들의 고립, 압살 광풍을 강경 진압해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바로 그 동지애의 노래로 만난을 이겨내며 오늘도 선군혁명영도의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는 동지사랑에 기초한 정치이다 

 

김일성 주석의 서거 후 집무실 금고에서는 혁명가 김책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만이 발견되어 만 사람은 그 높이를 다 알 수 없고,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숭고하고 거룩한 동지애의 세계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혁명의 길에 나선 사람 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것이 바로 동지이고 동지애라며 동지를 얻으면 천하를 얻고 동지를 잃으면 천하를 잃는다고 강조하여 왔다.

 

임종석과 전대협

 

임종석은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파)계열이다. 이 명칭은 마르크스주의 용어인 민족해방에서 따왔다. 임종석은 전대협 3기 의장이었다. 

 

전대협은 1987년 8월 19일, 충남대학교에서 전국 95개 대학에서 모인 3,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기 전대협 발대식을 열었다.

 

 

 


전대협은 발족 선언문에서 ●외세 배격과 독재 종식을 통한 자주적 민간 정부의 수립, ●조국의 자주적 평화 통일에 기여,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향한 연대, ●학문•사상의 자유 쟁취, ●전국학생총연합(전총련) 건설의 토대 마련 등 다섯 가지를 활동 목표로 내걸었다. 

 

전대협은 NL계열이 장악하였다. 

 

NL은 대한민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에게 종속되어 있는 민족모순이라고 판단하여 외세에 반대하며, 북한과 협력하여 통일로 나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종북 성향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흐름이 나타나거나, 심지어는 북한의 대남공작과 연계되기도 하였다. 

 

NL은 80년대부터 30여년간 한국 진보운동의 주류였으나, 2013년의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 2014년의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 이후 NL의 어두운 면들이 많이 밝혀지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NL은 반미, 반일, 친중, 친북 성향을 띄고 있으며 내부계파에 따라 강경파의 경우 아예 종북 성향으로 이어져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흐름이 나타나거나, 심지어는 북한의 대남공작과 연계되거나 내부 선전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임종석의 입장, 간첩으로 조작했다. 

 

임종석은 이러한 전대협의 친북성향적, 마르크스적 사상의 영향으로 정치계에 발들 들여놓았던 것이다. 그는 당시 닥치는대로 잡아들이고, 고문하고 간첩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김문수, 임종석은 김일성주의자

 

김문수는 임종석은 김일성주의자라고 했다. 감옥속에서도 라디오를 반입하여 북한의 김일성주의를 학습하였다고 했다. 

 

  

 

임종석의 북한퍼주기 

 

이외에 김문수는 임종석이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북한 방송을 이용하면 저작권료와 영상자료를 내도록 해 수십억을 북한에 갖다가 주었다고 했다. 북한퍼주기를 하였다. 

 

임종석은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친북한적인 사상은 변하지 않았다.

 

월간조선은 임종석이 약 8억을 북한에 갖다가 주었고, 23억을 법원에 공탁했다고 밝혔다. 

 

임종석씨는 2005년 7월 29일부터 2017년 5월 10일까지 경문협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경문협은 “6·15공동선언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에 기여한다”며 2004년 9월 설립된 비영리 민간단체다.

 

세간에 알려진 경문협의 대표적인 활동 사항은 ‘북한 저작권료 추심’이다.

 

임씨가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될 당시 경문협은 KBS를 비롯한 국내 방송사와 출판사로부터 소위 ‘남북 저작권 교류 사업’이란 명목 아래 북한 단체들과 맺은 협약에 따라 북한 저작물 사용료를 거둬들여 북한에 송금하는 일을 해왔다.

 

경문협은 ‘저작권료’ 명목으로 수취한 자금 중 7억9000만원을 북한에 송금(2005~2008년)했다. 2008년 당시 북한의 금강산 관광객 사살 도발 이후 대북 송금이 금지되자, 지금까지 23억원(2009년~)을 법원에 공탁했다.(월간조선, http://m.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A&nNewsNumb=202205100025) 

 

  

 

임종석, 지자체와 계약시 전쟁종결선언 문구 삽입

 

남북경제문화렵력재단(경문협)은 업무협약 때 종전선언을 명시한다. 북한이 요구하는 선언이다.  

 

"4.27 공동선언와 9월 평양선언은 사실상의 전쟁종결선언이며, 우리 민족이 가야할 지표이다"

 

  

 

이는 북한식 협약이다. 

김정일 주의자

 

그는 젊었을 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는 동지사랑에 기초한 정치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지사랑의 정치는 동서고금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고 했다. 친김정일주의자이다.   

 

  

 

 

 

그의 이력은 다음과 같다.  


△1966년 전남 장흥 출생 △용문고 △한양대 무기재료공학과 △한양대 총학생회장 △서총련 2기 의장 △전대협 3기 의장 △제16대 국회의원(서울 성동) △17대 국회의원 (서울 성동을) △열린우리당 대변인 △통합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민주통합당 사무총장 △박원순 후보 캠프 총괄팀장 △서울시 정무부시장 △더불어민주당 19대 문재인 대통령후보 비서실장 △청와대 비서실장

  

2. 신영복

 

신영복은 새문안교회 이상학에게는 학문과 신앙의 길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 넣어 주신 분이고, 문재인에게는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1980년 '천리마'라는 저널에서 2-6호까지 '통일혁명당의 숨결을 따라'라는 제목으로 통일혁명당에 대해 4회를 연재한다.  신영복은 통일혁명당 소속이었다.  

 

  

 

오늘 남조선 혁명가들은 통일혁명당 조직들을 꾸준히 꾸리는 한편 그 두리에 애국적 인민들을 굳게 묶어 세우며 지하와 산속에서 감옥과 교수대열의 영웅적인 반미 구국투쟁을 벌리고 있습니다.

 

통일혁명당이 걸어온 16년, 그것은 미제국의 침략자들과 극악한 사대매국노이고 파쇼독재자 박정희의 괴뢰도당을 반대하는 치열한 결전의 나날이었고, 생소한 이 당에 있어서는 수난의 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위대한 김일성주의 기치에 따라 혁명의 승리를 항시 줄닫음쳐온 영광의 길이었다.  

 

 

  1980년. 천리마

 

1966년 다 저물어 가는 어느날 기관지 발행문제를 논의하는 지도간부회의에서는 김종태, 리문규, 김질락, 신영복, 리재학, 정종서 등  동지들로 편집위원을 구성했다. 

 

우리 당이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님의 혁명사상을 구현하기 위해한 남조선 혁명의 전위당인 것 만큼 당원들과 각계 각층 애국적 인민들을 하나의 혁명전선에 묶어야 할 정치활동의 묵표로부터 출발하여 우리 당의 기관지를 <혁명전선>으로 했으면 하는 의견입니다. 

 

조국통일과 남조선혁명이라는 우리 당의 이름도 반영하였다고 봅니다.  좋을 것 같습니다.   

 

  

 

 

 

신영복, 북한 저널에 글 기고

 

신영복선생은 2010년에 북한 '사회과학원학보'에,'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 령도하신 조국해방전쟁시기 사대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기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문대통령은 신영복을 존경함으로 김일성 사상을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전광훈목사는 신영복을 존경하는 문재인은 간첩이라고까지 하였다

 



3. 윤이상

 

윤이상

 

북한로동신문은 윤이상은 북한에서 제 9차 음악회에서 <광주여 영원히>를 지휘하여 "반파쇼민주화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하여 억세게 싸우는 남조선 인민들의 절절한 감정을 폭넓게 형상한 것으로 관람자들의 칭찬을 받았다"고 했다.

 

 

 

윤이상은 김일성을 찬양하기 위하여 북한의 입장에서 '광주여 영원히'라는 관현악곡을 작곡 지휘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김일성이 원하는 광주의 음악을 만든 것이었다. 즉 광주사람들이 아닌 김일성에게 바치는 노래를 만든 것이었다. 

 

 

 

 

 

 

 

 

요약하면 임종석은 감옥에 있을 때 자신의 옥중서신을 북한 로동신문에 기고하였고, 신영복은 자신의 글을 북한 잡지에 기고하였고, 윤이상은 평양 윤이상 음악회에서 김일성을 위하여 <광주여 영원히>를 연주하였다. 모두 북한과 춤을 춘 사람들이었다. 

 

http://lawtimes.net/4127 (윤이상, 음악은 세계적, 이념은 김일성적)

 

통영에 가면 윤이상 음악관이 있으며 김정숙 여사는 독일에 있는 윤이상의 묘를 참배하기도 하였다.

 

 

 

 박근혜 정권 때 윤이상 기념관(2014년)을 세우기도 했다.

 

 

 

문재인은 신영복을, 김정숙여사는 윤이상과 함께 하므로 전광훈목사,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게는 그들이 모두 간첩으로 비춰졌다. 임종석, 신영복, 윤이상은 그들의 행적으로 보았을 때 종북주사파이거나 간첩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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