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목사, 시민군이 시민군을 쏘았다

시민군의 카빈소총으로 죽은 사람이 26명

편집인 | 입력 : 2023/05/15 [20:40] | 조회수: 130

전광훈목사는 4월 27일 광주 집회에서 518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언을 한 바 있다. 

 

이어 그는 518은 공산당간첩과 김대중 지지자들이 합작한 것으로 CIA문건에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폭동은 전문적 선동꾼에 의하여 발전했다고 주장하기도 하면서 시민군이 뒤에서 총을 쏘았다고 했다.

 

시민들은 카빈총을 들고 있었다. 

 

 

 

 

이에 대해 오월단체는 5.18을 왜곡했다고 전광훈목사를 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광훈목사의 발언 진위여부

 

당시 광주지검이 분류한 사망원인을 보면 카빈총(Car)에 의해 죽은 사람이 무기를 탈취한 5.21일에 17명, 22일에는 7명, 23일에 2명, 26, 27일에 1명이 사망하였다. 도합 28명이다.  M16으로 사망한 사람은 97명이었다.  차량으로 사망한 사람이 7명이다. 

 

  

 

조사천은 카빈총에 의해 사망


우리가 잘 아는 사진의 주인공인 조사천씨는 시민군이 가진 카빈총에 의하여 사살되었다.  

 

  

 

조사천씨는 1980. 5. 21. 14:00 광주기독병원에서 사망을 했고, 1980. 5. 28. 전남도청 상무관에서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한광수가 검시를 하였다.

 

참여한 의사는 최유섭이고 군검찰관은 중위 나중태이고, 경찰은 경사 주영근이고, 군의관은 대위 박승일이었다. 사인은 칼빈총상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518 사이버 참배(http://cyber.518.org/main.php)에 의하면 도청앞에서 계엄군이 쏜 총으로 맞은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당시 계엄군은 카빈소총이 아니라 M16을 갖고 있었다.  당시 광주지검은 5.18 관련 사인을 일일히 확인하였다. M16은 사입구보다 사출구가 더 컸고, 카빈총은 사입국와 사출구가 유사했다. 

 

  

 

  

 

M16소총으로 맞은 사람도 분류했다. 

 

 

 

그 중에는 차량사고로 죽은 사람들도 7명으로 분류했다. 

 

  

 

신원미상

 

신원미상도 상당히 많았다. 등기상의 주소와 거주지가 일치하지 않았다. 

 

  

 

  

 

  


요약하면 전광훈목사가 말한대로 카빈총에 의해 죽은 사람이 26명이나 될 때, 시민군이 시민군을 쏘았을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한다. 전목사는 고정간첩들이 소동과 폭동에 앞장서서 광주사태를 불러일으켰다는 주장이다.  

 

당시 계엄사령관 이희성도 고정간첩이 광주에 들어왔다고 판단했다. 

 

친애하는 시민여러분!

이제까지는 여러분의 이성과 애국에 호소하여 질서회복과 질서확립을 기대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총기와 탄약과 폭발물을 탈취한 폭도들의 횡포는 계속 가열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하에서는 군인이 소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민여러분!

소요는 고정간첩, 불순분자, 깡패에 희애 조정되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대열을 이탈하여 집과 직장으로 돌아가십시오.

 

 1980. 5. 23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이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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