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로동신문, 제주 4.3과 5.18 광주항쟁의 공통점은 무기탈취와 미군철수

로동신문을 통하여 본 북한 개입의 가능성 여부

편집인 | 입력 : 2023/05/13 [16:33] | 조회수: 361

1965. 1. 17자 로동신문은  제주 4.3사건에 대해서 '온 섬에 타오른 반미 구국 투쟁의 불길'이라고 하며 항쟁의 이면에는 반미사상과 미군철수가 있었다.   

 

제주 4.3 사건(1965. 1. 17자 로동신문)

 

"1948년 초 미제는 남조선을 계획 강점하고 저들의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남조선에서 단독 <선거>음모를 꾀하였다."

 

"미제의 510 망국 당선을 한달 앞둔  1948년 4월 3일 제주도 인민들은 항쟁의 불길을 높이 지펴올렸다. <<미군은 즉시 철거하라>, <유엔 조선 위원단은 물러가라>, <망국선거 절대 반대>, <조선통일 독립만세>, 봉기자들은 이렇게 외치며 도내 10여 개 경찰지서를 단꺼번에 짓부수고 무기를 탈취하였으며 선거 사무소와 선거 문건들을 불살라 버리고 테로단과, 악질 주구들은 처단하였다"  

 

  

 

  

 

  

 

  

 

광주 5.18 항쟁


1980. 5. 23 자 로동신문은 광주의 폭동군중들이 군대식 부대들을 편성하면서 병역경험자들이 많은 무기를 손에 넣었다고 하면서 광주의 폭동군중이 무기고에서 총과 실탄을 탈취하였다고 했다.  

 

  

   

무기탈취는 5.21일 전적으로 이루어졌다. 

 

4시간 만에 탈취한 무기는 카빈, M-1, 기관총 등 5,403정, 탄약 288,680발, 수류탄 270발, TNT 10여 상자, 폭약 2,500여 상자, 뇌관 35만 개 등이었다. 출처 : 대경일보(https://www.dkilbo.com)

 

“이들은 아침 9시경 5대의 대형버스에 타고 아세아 자동차 공장으로 달려온 300명 가량의 또 다른 시위대와 합류했다. 이들 중 일부는 버스 7대를 탈취하자마자 담양으로 달려가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300명 가량을 싣고 다시 자동차 공장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팀을 구성한 뒤 4대의 장갑차와 370여 대의 군용차량, 버스 등을 몰고 17개 시와 군의 무기고를 향해 질주해갔다. 그렇게 불과 몇 시간 만에 38개 무기고를 습격한 그들은 막대한 수량의 무기를 탈취했다.” 

 

“칼빈 소총이 3,646정, M1 소총이 1,235정, M16소총 34정, 권총 42정, 공용화기 51정, 민수용 총포 395정 등 총 5,403정이었으며 그 외 소화기탄약 288,680발, 폭약 2,180톤 등이었다.

이 외에도 270여 발의 수류탄, 군용차량과 순찰차 등을 포함해 779대의 차량이 탈취되었다.” 소총만도 약 5천정, 2개 연대 규모의 무기가 탈취된 것이었다. 한편 5월 27일 상황이 일단락된 후 회수된 무기 수량은 “총기 2,836정, 탄약 83,724발, 차량 137대, 폭약 300상자, 수류탄 143발”
출처 : The New Paradigm(http://www.npknet.org)

 

  

 

시민군들은 4시간만에 17개시군 38개 무기고를 털었다. 1980년 5월 21일 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4시간 동안 17개 시군에 꼭꼭 숨어 위장돼 있는 38개 무기고가 털렸다.

38개 팀이 각 무기고로 가는 약도 한 장씩을 가지고 동시에 출발하기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반 국민은 무기고 옆을 지나면서도 그게 무기고인지를 알지 못한다. 무기고 위치는 비밀로 관리되는 것이다.

 

총상 사망자 116명 중 85명이 카빈총에 사망했다. 5.18사태에서 발생한 사망자 154명 중 80% 이상이 계엄군 없는 데서 사망했고, 기록에 의하면 총 116명의 총상 사망자 중 카빈총에 의해 사망한 사람이 85명(75%)이다. 이는 시위에 참가한 시민군 사상자 중 다수가 시민군이 갖고 있던 카빈총에 사망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시민군이 광주시민을 쏘았는지 여부를 밝혀야 한다.(대경일보,https://www.dk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71937)

 

 

  

당시 전보병학교 5.18 상황실장 홍순영소령도 전남지역의 무기고들이 탈취당하였다고 했다. 

 

  

 

  

 

 

무기를 탈취하여 유죄선고를 받았던 사람이 문재인 정권하에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로동신문은 광주 봉기자들이 무기반환을 거부했다고 밝히고 있다.

 

  

 

 로동신문은 쇠몽둥이, 식칼, 망치 등으로 무장하였다고 했다. 

 

  

 

임철우 장편소설에서도 낫과 칼 언급 

 

  

 

 "무엇보다 상당수 시민들의 손에는 저마다 무기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각목이며 쇠파이프가 대부분이 었지만 더러는 낫이나 칼 그리고 야구방망이를 쥐고 있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 그 중엔 길다란 각목 끝에다가 낫이나 칼을 동여맨 뒤, 대담하게도 멘 앞줄까지 나와서 그걸로 공수대원들을향해 찌르는 시늉을 해보이며 킬킬대는 자들도 있다."

 

  

 

북한인 소행으로 알려진 삐라는 무기를 들라고 선동했다.

 

애국시민이여 ! 손에는 돌, 몽둥이면 몽둥이를 들고 일어서라! 애국 근로자여! 손에는 닥치는 대로 공구를 들고 일어서라! 애국 농민이여! 손에는 삽과 괭이를 들고 일어서라!...승리의 그날까지 전 도민은 무기를 들고 매일 정오를 기하여 전남 도청앞 광장 공원 금남로 광주신역으로 모이자. 1980. 5. 21  

 

 

 

 낫



 무기

 

  도끼

 

  

 

미군철수


 광주사태 이면에는 미군이 있다고 주장하여 반미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미군철수이다. 

 

  

 

 

 

미순이 효순이 사건

미순이 효순이 사건도 부각시켜서 미군철수를 노골적으로 부추키고 있다. 

  

  

 

  

 

  

 

광우병 사건

 

 광우병사건도 결국 반미를 부추키기 위한 것이었다. 

 

5월 5일밤 남조선에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전면 허용하는 리명박 역도를 반대하는 각계의 투쟁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제주4.3, 광주 518, 미순이 효순이 사건, 광우병 사건 이면에는 결국 미군철수였다. 지금도 남한에서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종북성향이거나 고정간첩이 남한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북한은 광주항쟁이면에 미군이 있다고 주장하여 미군철수를 외친 바 있다. 

 

고려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도 그의 논문에서 북한의 개입가능성을 인정하였다. 

 

김광동의 입장

 

 

이외에도 북한의 광주항쟁 생방송 등을 볼 때 광주에 북한사람들이 들어와서 취재를 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정관철 상사를 추모하며"라는 영상은 북한의 생방송 영상을 토대로 하고 있다.

 

정관철의 죽음은 공수부대가 1980. 5. 21. 집단 발포하기 전에 하루 전인 5.20에 시민군에 의하여 먼저 차량강습으로 살해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관철은 광주사태 최초로 죽은 군인이다.  

 

  

 

  

 

발포명령이 내려지기 전에 1980. 5. 20. 군인의 무자비한 폭행에 10대 사망자도 2명이 나왔다. 그러나 집단 발포는 5.21 이루어졌다. 

 

  

 

다음의 영상을 보면 북한 영상을 토대로 한다. 북한은 518을 생방송으로 전역에 내보냈다. 그래서 북한인들은 자신들의 지인이 광주에 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주 4.3과 광주 518의 공통점은 무기탈취와 미군철수이다. 모든 폭동사건 이면에는 미군철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남로당이거나 북한이 개입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미군철수를 외치는 것은 북한의 소행이다. 광주사태에서도 미군은 살인마 전두환을 지원하였다며 미군철수를 외쳤다. 이는 북한이 개입하였을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한다.

 

북한이 선동하면 피해는 항시 민중들이 보게 되어 있다. 광주항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북한 사람들이 들어와 현수막과 삐라를 통하여 북한 언어로 선동한 사실을 알 수 있고, 518을 생방송한 것은 북한 촬영기사가 광주에 개입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천용의 증언

 

북한특수부대 출신 임천용씨는 장성민의 시사탱크에 출연하여 광주사태에 북한특수부대가 참여하였다고 진술하기도 하였다. 임천용씨는 전광훈목사처럼 북한 특수부대가 민간인복으로 가정하고 민간인들을 쏘았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부대 대대장이 증언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이 해상을 통하여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영상을 보려면 다음을 클릭하면 된다.

 

北 특수부대 대위 출신 임천용의 5.18에 대한 폭로 - 대한민국 근현대사 - 플레비언나비공동체 (daum.net, 클릭)

 

 

 

 

http://www.lawtimes.net/4625 

언어를 통해 본 광주의 북한개입가능성 여부(2, 뉴스와 논단)

 

http://www.lawtimes.net/4617

 

언어를 통해 본 광주사건에 북한 개입 가능성 여부(1, 뉴스와 논단)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관련기사목록